정읍
정읍의 유럽마을 엥겔베르그[박상준 작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정리] 정읍은 백제가요 정읍사의 도시다. ‘고려사’에는 물건을 팔러 간 남편이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부른 노래라 전한다. 정읍사의 고장답게 정읍을 대표하는 관광지 역시 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 한국가요촌 달하 등이다.

요즘은 유럽마을 엥겔베르그가 정읍사 만큼 관심을 끈다. 김병조 대표가 웰니스관광 휴양촌으로 조성했다. 정읍사를 떠올리며 예스러운 전통의 풍경을 예상했던 이들은 정읍 유럽마을 풍경에 놀란다. 내장산 인근에서 유럽의 어느 도시로 순간 이동한 듯하다. 엥겔베르그는 스위스 인터라켄 북동쪽의 마을 지명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2024년 12월 45년만의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일을 당한, 나라의 주인 국민의 마음이 여전히 답답한데, 차라리 정읍 속 유럽마을에 잠시 은둔하며 마음을 추스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천사를 뜻하는 엔젤(Engel)과 ’산‘을 의미하는 베르그(Berg)를 합친 지명으로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김석주 촌장이 제일 좋아하는 휴양지다. 그렇다고 스위스 마을은 아니다. 독일 문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반을 아우른다. 내장산 단풍이 가을 담당이라면 엥겔베르그는 겨울~봄~여름 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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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베르그의 특이한 지붕

마을은 크게 실버타운 형태의 일반분양 공간과 유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건물동 그리고 유로마켓동으로 나뉜다. 일반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유로마켓 1층의 베이커리 카페로 면적이 넓고 층높이가 높아 여유롭게 머물며 쉬기에 좋다. 천장은 유럽식 목골 구조(건축물의 뼈대는 목재로 구성하고 벽체는 다른 구성재를 이용하여 만든 구조)가 고스란하고 카페를 채운 가구 역시 유럽풍이다.

벽면은 앤티크 소품이 장식하고 있어, 유럽의 어느 저택에 들어온 듯 구석구석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베이커리 카페는 차와 디저트 등으로 이뤄진 애프터눈티 메뉴를 예약제로 운영한다.

베이커리 카페 외에 3층 앤티크 라운지 또한 유로마켓의 명소다. 앤티크 라운지는 애프터눈티 예약 고객에 한해서 개방한다. 도슨트와 함께 약 30분가량 돌아보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층 전체를 가득 채운 앤티크 소품과 가구에 압도된다. 김병조 대표 가족이 2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이다.

독일 마이센 도자기부터 순금으로 금박 입힌 그릇과 주전자, 100년 이상 된 목가구 등 진귀한 볼거리가 많다. 그 가운데 스페인 옛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해 만든 식탁은 김병조 대표가 가장 아끼는 전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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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베르그 유로마켓

유로마켓을 나와서는 본격적인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탐방에 나선다. 차 박물관은 앤티크 라운지와 비교해 관람할 만하다. 유로마켓 베이커리 카페는 이례적으로 진년보이차(21년 발효) 메뉴를 내는데 그 비밀 또한 차 박물관에서 밝혀진다.

차 박물관은 이양수 향원당 원장이 반세기 넘게 공을 들여 모은 다구와 다기 등이 반짝인다. 앤티크 라운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자사호(자주빛 진흙이 특색인 항아리), 탕관(약을 달이거나 국 등을 끓이는 그릇), 개완(뚜껑이 있는 찻잔) 등 그 모양과 빛깔 등이 아름다워 어느 하나 쉬이 지나칠 수 없다.

3층은 21년 숙성 보이차가 빼곡한데 초입부터 은은한 차향이 매혹적이다. 차 박물관은 한국, 중국, 일본의 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유럽마을 안의 동양 차 문화공간이다.

차 박물관을 나와서는 유럽마을을 돌아본다. 독일 마을을 모티브로 한 건물의 이중경사(Mansard) 지붕, 첨탑 등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건물과 건물 사이 거리나 광장을 거닐 때는 잠시 유럽으로 연말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실내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지만, 일부 개방하는 내부는 유럽식 목골 구조나, 바닥을 꾸민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 주의 도시 깃발 문양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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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엥겔베르그 유럽마을

한국가요촌 달하는 ‘정촌가요특구’의 새로운 이름이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달하’는 정읍사 가사의 첫 문장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의 첫 번째 단어다. 지금 말로 풀어쓰면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다. 원조 한류 가수 보아의 ‘No.1’이 정읍사에서 달의 모티브로 가져왔다.

가요전시관 전시는 크게 정읍사와 현대 음악 두 가지 테마로 나뉜다. 제1전시실은 정읍사 설화를 소개하고 이를 영상 등으로 연출해 선보인다. 제2전시실은 1900~1980년대 현대 가요의 흐름을 다룬다. 가요의 역사를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는데 마치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하다. 옛날 극장이나 공연장, 음악다방 등을 재현해 보는 재미가 있다.

갤러리카페 이오일스페이스는 정읍을 찾는 20~30대가 손에 꼽는 ‘핫플’이다. 가운데 잔디마당과 스크린을 두고 ‘ㄷ’자형으로 자리한 2층 건물은, 도로를 등지고 주변 산세를 품는다. 그저 흔한 지역 갤러리카페 정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카페 한가운데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Focus Moving 2018’이 턱 하니 걸려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는 백남준과 김중만의 작품이 있다.

서울스퀘어의 ‘걷는 사람’으로 유명한 줄리안 오피(Julian Opie), 작품에 ‘X X’ 눈을 그려 넣는 팝 아티스트 카우스(Kaws), 아톰 형상의 오브제로 잘 알려진 허명욱 작가 등의 작품도 찾아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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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쌍화차

레트로 감성의 여행자라면 정읍에서 쌍화차 한 잔을 마시지 않고 떠날 수는 없다. 하물며 마음마저 덥히는 겨울 쌍화차이다. 정읍의 정읍쌍화차거리는 정읍 8경의 하나다. 새암로를 따라 약 450m 거리에 몰려 있다. 쌍화차는 숙지황, 생강, 대추 등 총 20여 가지 약재를 달여 만든다. 정읍이 쌍화차로 알려진 건 주재료인 숙지황의 주산지이기 때문이다.

차 뿐 만 아니라 밤, 은행, 잣 등의 고명을 먹는 즐거움 또한 쌍화차만의 매력이다. 곱돌로 만든 찻잔에 마시며 같이 나오는 가래떡, 누룽지 등을 먹는 즐거움도 각별하다.

한국관광공사의 의뢰로 현지를 탐방한 박상준 작가는 당일 여행으로 유럽마을 앵겔베르그→한국가요촌 달하→정읍쌍화차거리를, 1박 2일로는 첫날 유럽마을 앵겔베르그→한국가요촌 달하→정읍쌍화차거리, 둘째 날 정읍시립미술관→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이오일스페이스 코스를 권했다.

숙박지로는 호텔로얄, 골드스테이호텔, 호텔그린토피아 등을, 먹거리 핫플로는 대일정(참게장백반), 양자강(비빔짬뽕), 다선전통찻집(쌍화차) 등을 추천했다. 주변에는 백제가요정읍사문화공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내장산국립공원, 무성서원 등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12월 추천 가볼만한 곳, 글·사진=박상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