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52% 원리금 비보장형 IRP
1년간 수익률 증권사·보험사 추월
실물이전 도입, 머니무브 우려 여전
원리금보장형 수익은 타업권에 뒤져
수년간 증권사에 밀리던 은행 원리금 비보장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올해 들어 평균 10% 이상으로 올라서며 다른 업권과 비교해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미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관련 서비스 강화 등 개선 노력이 이어진 결과다.
다만 은행 퇴직연금 상품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원리금 보장형에서 수익률이 타 업권에 비해 낮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현재 과반 이상인 점유율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달부터는 자유롭게 운용사를 갈아탈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도입되며 본격적인 ‘머니무브(자산 이동)’를 전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증권사도 제쳤다” 은행 퇴직연금 수익률 최고 13%=22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총적립금 1조원 이상 금융사 32개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분야를 막론하고 은행권의 수익률이 여타 업계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원리금 비보장형 개인형퇴직연금(IRP) 최근 1년 수익률(3분기 말 기준)은 평균 13.06%로 증권사(12.42%), 보험사(10.54%) 등과 비교해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큰 확정급여형(DB)의 경우도 은행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이 10.04%로 유일하게 10%대를 넘어섰다. 증권사는 9.27%, 보험사는 6.01% 수준에 그쳤다. 은행 확정기여형(DC) 수익률도 평균 13.06%로 증권사(12.42%), 보험사(10.54%) 등에 비해 높았다.
지난 수년간 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업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며,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수익률’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온 바 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증권사의 선전이 돋보이며, 적립금 1위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최근 5년 장기수익률을 비교하면, 은행의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수익률은 IRP 기준 평균 4.13%로 증권사(4.61%)와 비교해 0.48%포인트 낮았다. DB형과 DC형은 평균 2.8%, 3.88%로 증권사에 비해 각각 0.36%포인트, 0.78%포인트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DB형과 DC형의 경우 평균 수익률이 보험사에 비해서도 낮게 나타나며 업계 최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은행권‘고객 지키기’에 수익률 확보 사활=은행 퇴직연금 수익률이 올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해 7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등에 따라 ‘고객 확보’ 경쟁이 거세지며, 관련 서비스를 강화한 덕택이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고객의 선택권을 강화해 금융사의 운용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취지로 도입됐다.
각 은행은 퇴직연금 특화 브랜드를 출시하고, 관리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은행은 지난 2020년 시중은행 최초로 연금 전문상담센터인 ‘KB골든라이프 연금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도 지난 8월 ‘신한 연금라운지’ 3곳을 추가 개설하는 등 서비스 영역을 넓혔다. 하나은행도 지난 8월 VIP 연금 고객을 위한 대면 상담 채널을 개설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7월 ‘연금다이렉트마케팅팀’을 신설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되며, 기존에 우려됐던 증권사로의 ‘머니무브’ 현상도 크게 벌어지지 않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3분기 말 기준 210조2811억원으로 전체 적립금(400조793억원)의 52.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3년 전인 2021년 3분기 말(51%)과 비교해 1.6%p 높아진 수치다. 같은 기간 증권사 점유율은 21.5%에서 24.1%로 늘었지만, 보험사 점유율이 감소하며 이를 상쇄했다.
▶퇴직연금 이전 쉬워지며 ‘머니무브’ 우려 여전=다만 일각에서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가 개시되며 본격적인 ‘머니무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기존에는 DC형 퇴직연금이나 IRP 계좌를 타 금융사로 옮기려면, 가지고 있던 상품을 모두 해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주요 상품들을 해지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사로 자금을 옮길 수 있게 됐다. 금융사의 수익 창출 능력이 더 중요하게 된 셈이다.
특히 은행들이 가진 퇴직연금 자산 중 원리금 보장형의 비중은 3분기 말 기준 88%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이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 수익률(최근 1년)은 상품별 1.74~2.03%로 증권사(2.17~2.43%)와 보험사(1.97~2.4%) 등과 비교해 되레 낮은 상황이다. 또 장기 수익률을 판단 지표로 활용할 경우 고객 이탈 우려는 여전하다.
이에 은행들은 퇴직연금 서비스 개선과 함께 홍보 활동을 강화해 ‘고객 지키기’에 더 많은 투자 역량을 할애한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10년 안에 퇴직연금 시장이 1000조원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면서 “수수료 이익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고객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성 확보와 관리 편의 제공 등에 초점을 맞춰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