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신분증 도입으로 손쉽게 위조
미성년자 문서·인장 피의자 수 3년새 2배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미성년자한테 술을 팔아서 이득을 취하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잠깐 위조 신분증에 속아서 들여보내 주면 영업정지인거에요. 장사를 한다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근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거죠.” (서울 마포구 홍대에서 룸술집을 운영하는 이모(36) 씨)
2025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연말을 앞둔 시기 자영업자들은 위조신분증으로 미성년자가 출입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술집, 노래방, PC방 등 업종 상관없이 미성년자 출입이 적발되면 연말 대목을 앞두고 장사를 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확인 절차를 소홀히해 미성년자에게 술 등을 제공하게 된 억울한 자영업자를 위해 올해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자영업자 뿐만 아니라 위조신분증을 이용한 청소년, 위조신분증을 제작한 업자의 처벌 수위도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위조신분증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모바일 신분증이 도입되며 미성년자들의 위조신분증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19세 미만 ‘문서·인장 범죄’ 피의자 수는 2021년 656명, 2022년 875명이었던 것에 비해 지난해에는 1229명으로 증가했다. 현재도 X(엑스·구 트위터)에 ‘모바일신분증’을 검색하면 ‘상세정보 클릭되는 리얼퀄리티 앱형식’, ‘5분 내 제작’ 등의 홍보문구를 적은 ‘신분증 위조’ 업자들이 검색결과물로 제시된다. 실물 신분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제작은 20만원 선, 모바일 신분증(정부24·PASS앱 등)은 3만원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실제 기자가 업자와 접촉해보니 ‘편의점, 술집, 전자담배 판매점, 클럽, 마트, 모텔 모두 이용 가능하다’며 5분 만에 만들어준다고 홍보했다. 예시로 보내 준 양식을 보니, 정부24의 모바일 신분증과 흡사하게 QR코드가 삽입돼 있고 ‘캡처방지 시스템이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하단에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정부24의 모바일 신분증에는 첫 화면에서 생년월일이 기재돼 있지 않고, 상세정보를 눌러야지만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모바일 신분증 검증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QR코드를 직접 찍어보지 않는 이상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위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영업자의 부담은 더 커졌다. 홍대 인근에서 룸 술집을 운영하는 이씨는 “요즘은 10명 중 7명은 모바일 신분증을 제시한다. 실물 신분증의 경우 빛에 비춰보거나 위조한 것 같으면 손톱으로 긁어보는 식으로라도 확인하면 되는데, 모바일 신분증은 포토샵으로 자기 사진을 합성해서 만들어 오거나 감쪽같이 만들어 와서 육안으로 구분하기 쉽지가 않다”며 “포토샵으로 만들었다 싶으면 한번 눌러보고, 어플로 띄워주면 상세정보를 눌러보는 방식으로 확인을 한다”고 했다.
포차를 운영하는 김모(34) 씨는 “무조건 실물 신분증을 원칙으로 하고, 모바일 신분증이면 체크카드 등 다른 카드랑 본인 명의가 일치하는지 이중, 삼중 검사를 한다”며 “이제 갓 20살이 될 2005년생들은 절대 모바일 신분증을 받지 않고, 성인이어도 실물 신분증을 찍은 사진이면 받지 않는다. 무조건 증거를 남기기 위해 자리 안내 전에 폐쇄회로(CC)TV 앞에서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전했다.
미성년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손님으로 받았을 경우 자영업자의 타격은 크다. 1회만 적발돼도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게가 문을 닫으면 매출만 타격을 받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일자리도 위험해진다. ‘영업정지’를 고지해야 하기에 낙인효과도 생긴다. 위조신분증으로 감쪽같이 속여 억울하게 영업정지를 당한 자영업자를 위해 올해 초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과 식품위생법 시행령 등이 개정되기도 했다. 영업주가 신분확인한 사실이나 협박, 폭행 등을 당한 경우 그 사실이 확인되면 과징금 등 행정처분이 면제되고, 3차까지 적발되면 영업을 취소까지 할 수 있었지만 영업정지 2개월로 행정처분을 완화했다.
자영업자들은 기댈 곳이 생겼지만, 여전히 자영업자 위주의 처벌이 아쉽다고 했다. 공문서 위·변조죄는 벌금형 없이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이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중형까지 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홍대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박모(25) 씨는 “미성년자를 잡으면 열에 아홉은 ‘미성년자인데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벌금을 내는 만큼 위조 신분증을 이용하는 미성년자들도 그에 상응하는 벌금을 내던가,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술 한 잔 마시려고, 담배 한 갑 사려고 미성년자들이 위조 신분증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문서 위·변조의 경우 무겁게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5분이면 위조 신분증을 만들 정도로 위조가 손쉬워졌기 때문에 정부 또한 기술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동계 방학 기간을 맞아 ‘청소년 온라인범죄 스쿨벨’을 발령했다고 19일 밝혔다. 스쿨벨이 발령되면 서울시내 1474개 초·중·고 학교와 학부모 78만명에게 스쿨벨 발령 사실이 통보된다. 경찰은 청소년 온라인 범죄, 불법 온라인 도박,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 마약, 사기 범죄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