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스타트업·슈퍼마켓·온라인 쇼핑몰·카페·캠페인·가수 이름까지…. 사과 모양의 로고나 이름을 쓰는 기업·단체·인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온갖 상표권 소송을 건다. 심지어 배나 파인애플 같은 과일 형태 로고에도 문제 제기를 한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얘기다.
애플의 또 다른 별명은 ‘상표권 깡패’다. 사과 로고 사수를 위해서라면 법적 공방도 마다하지 않아서다. 비영리 단체 테크투명성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애플이 다른 단체에 상표권 이의 신청을 제기한 건수는 215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구글·아마존·페이스북(메타)·마이크로소프트의 건수를 모두 합친 135건보다 1.5배가량 많다.
애플, 111년 스위스 과일연합에 소송
21일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애플이 사과 로고를 사용하는 스위스과일연합(FUS)에 지적재산권을 요구했다. 애플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2011년부터 사과 로고를 사용해왔던 FUS는 더 이상 해당 로고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FUS는 111년 역사를 가진 스위스 최고의 과일 관련 연합이다.
지미 마리에토즈 FUS 이사는 “우리가 한 입 물린 사과를 로고로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애플의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애플의 목적은 사과에 대한 광범위한 권리를 소유하는 것인데 우리에게 사과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은 수년 전부터 사과 로고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법정 공방을 벌였다. 2011년 9월에는 독일의 작은 카페 아펠킨트가 사용하고 있는 로고가 자사의 로고와 비슷하다며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카페 주인이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카페 주인이 맞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2년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애플이 소송을 취하했다.
배·파인애플 등 과일 형태 로고에도 문제 제기
2020년엔 구성원이 5명뿐이던 미국 스타트업 ‘프레피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프리페어의 로고는 사과가 아닌 배 모양이었지만 애플은 “직각 잎이 있는 최소한의 과일 디자인으로 구성돼 애플 로고를 쉽게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에 프리페어 측은 “세계 최대 기업 중 한 곳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은 무서운 경험”이라고 반발했다.
프리페어는 “‘배’를 ‘사과’로부터 구해주세요”라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시작해 수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결국 소송에 수천 달러를 쓰고 배의 꼭지에 달린 잎 디자인을 조금 바꾸기로 애플과의 상표권 분쟁에 합의했다. 이후 애플은 사과 로고의 잎사귀 부분만 따로 떼어 상표등록을 하는 등 권리 범위를 넓혀갔다.
애플은 전 세계에서 지적재산권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사과는 물론 배, 파인애플 같은 과일 형태 로고나 기업명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해왔고, 애플에 맞설 자금력이 없는 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표권을 포기해왔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애플은 일본·터키·이스라엘·아르메니아 등에도 유사한 요청을 해왔고, 일부 국가에선 이를 받아들였다.
비틀즈 로고 베꼈던 애플, 다른 회사엔 엄격한 잣대
이처럼 ‘모방’에 예민한 애플도 설립 초기 ‘카피캣’ 논란에 휘말렸다. 애플은 1977년 설립과 함께 사과 이름과 로고를 썼다. 하지만 이보다 9년 앞선 1968년 이미 비틀스가 음원유통회사인 ‘애플(Apple Inc.)’을 설립해 사과 로고를 등록한 후였다. 비틀스는 1978년 애플 컴퓨터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 컴퓨터는 1981년 음반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틀스와 합의하고 8만 달러(약 1억원)의 사용료를 냈다. 그러나 애플이 1991년 매킨토시에 음악 작곡 기능을 넣고 2003년 아이튠스로 음원 유통사업에 나서면서 다시 소송이 붙었고, 결국 2600만 달러(약 336억원)를 배상했다. 애플과 비틀스의 크고 작은 법적 공방은 30여 년간 이어진 끝에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