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이달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주택가에 있는 한 빈티지숍(구제 옷가게). 공휴일임에도 손님들로 북적댔다. 이곳은 ㎏(킬로그램) 단위로 옷을 판매하는 일명 ‘킬로숍’이다. 어떤 옷이든 ㎏당 2만5000원에 살 수 있어 손님들에게 ‘갓성비(갓+가성비) 매장’으로 입소문을 탔다.
카트에 옷을 담던 한 손님이 계산대 앞으로 가서 저울에 옷 무게를 달았다. ‘1.24㎏ 3만1000원’이 전자 저울에 표시됐다. 니트 두 벌에 원피스 한 벌 가격이 채 4만원을 넘지 않았다.
이 가게 주인 전정희(37) 씨는 지난해 2월부터 매장 운영 방식을 킬로숍으로 바꿨다. 불경기에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도 팍팍해지자 내린 결정이었다. 전씨는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 10~20대이다 보니 한 벌에 1만원하는 옷도 고민해서 사더라”며 “‘킬로그램 세일’을 도입하고 손님이 훨씬 늘었다”고 말했다.
전씨에 따르면 최근 이곳 같은 빈티지숍을 찾는 발걸음도 부쩍 잦아졌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만의 개성을 찾는 마니아층에서 인기였지만, 요새는 옷을 싸게 살 수 있어 (빈티지숍을) 많이들 애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매장을 찾았다는 손님 이지은(28) 씨는 “경기 부천시에서 찾아왔다”며 “벌써 8번째 방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며 “독특한 스타일의 옷도 많고 무엇보다 겨울옷 한 벌을 살 가격에 여기서는 네 벌을 건질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겨울옷, 1벌 살 가격에 4벌 건지는 곳”…‘갓성비 매장’된 빈티지숍
실제로 이날 기자가 직접 구매한 캐시미어 코트와 청바지의 가격은 총 3만1000원에 불과했다. 캐시미어 코트 한 벌에 10만~30만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인 셈이다.
구제숍 이외에도 대학가 곳곳에서 이 같은 킬로숍 방식으로 새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임대료가 저렴해진 상권에 입점해 대학생들의 지갑을 쉽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캐주얼 브랜드는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신촌 지역에서 킬로그램 세일을 진행했다. 올해 1월 홍대 매장에서 ‘1㎏에 3만원’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 데에 이어 재고 정리를 위해 행사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물가 탓 대학가·주택가서 ‘킬로숍’ 늘어…옷 무거운 겨울, 매출↑
킬로그램 세일 방식은 보통 의류 도매상이 소매상을 상대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과거 국내에는 ‘동묘 중고시장’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불경기와 고물가 탓에 대학가나 주택가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롯데마트가 2012년 ‘킬로 패션’ 이벤트를 기획한 바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해외에서는 빈티지 킬로숍이 패피(패션 피플)들의 관광 코스일 정도로 이미 유명하다. 영국에서는 지역 마다 팝업 이벤트 형식으로 킬로 세일이 열린다. 입장권을 구매하면 행사장에 들어가 옷을 고를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킬로숍도 맹점은 있다. 계절별 매출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옷 무게가 가벼운 여름에는 매출이 급감하는 반면 겨울에는 매출이 뛴다. 킬로 패션이 시즌 오프 상품의 땡처리 가게나 계절을 비교적 덜 타는 구제옷 시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