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억 투입’ 여수시・LH 만흥지구 개발사업 난항

고령·독거노인들 100여가구 “오갈 곳 없다” 한숨

평화롭던 검은모래해변 주민·상인간, 갈등만 고조

지역 국회의원 재검토 건의 등 사업백지화에 주목

[단독] ‘여수밤바다’ 마을 가난한 노인들 내쫓길 위기
검은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은 만흥지구 개발사업을 결사 반대하고 나섰다. 서인주 기자
[단독] ‘여수밤바다’ 마을 가난한 노인들 내쫓길 위기
일제강점기에 개장한 만성리 해수욕장은 안산암과 검은모래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여수)=서인주 기자] “죽을 각오로 내고향 내가 지킨다”, “LH는 출입을 하지마라”, “개발계획 전면 철회”

19일 찾은 여수 만성리 일대는 여수시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하는 만흥지구택지개발사업 반대 현수막 수십장이 나붙어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시골마을 대문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붉은색 경고판이 내걸려 있다. 일제강점기 1939년에 개장한 검은모래해수욕장에 평지풍파가 인 것이다.

165가구가 살고 있는 조용한 어촌마을은 지난 2018년 개발붐이 일면서 민심이 갈라졌고 인심은 쪼개졌다.

만흥지구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다. 오는 2024년까지 3293억원 가량을 투입해 40만제곱미터에 아파트 2758세대, 단독주택 174호, 상업지구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무주택 서민, 청년, 신혼부부 등 주거지원 계층 시민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공공성이 강한 사업으로 주택용지 중 공동주택용지가 90% 가량이다.

문제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이 거리에 내몰린다는 점이다.

이대로 개발이 강행되면 80%가량 되는 70~80대 원주민들은 사실상 생활터전을 잃게 된다. 돌봐 줄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만 20여 가구다. 치매를 앓고 있거나 암투병을 하고 있는 주민도 있다. 땅을 내어주고 손에 쥐는 보상금만으로는 살길이 막막하다. 이들의 주수입원은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수당과 생계보조금이 대부분이다. 자식이 있지만 연락을 끊은 곳도 상당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라”며 개발사업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여수만흥지구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 진 배경이다. 하지만 추진동력이 약하다. 회원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 주민이다 보니 힘이 부족하다. 올해 64세인 김철수 비대위원장이 밑에서 4번째다. 90세가 넘는 부모를 모시는 김 비대위원장은 만성리해수욕장에서 횟집과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단독] ‘여수밤바다’ 마을 가난한 노인들 내쫓길 위기
김철수 만흥지구 비상대책위원장이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수시와 LH가 추진중인 만흥지구개발사업 전면철회를 강조하고 있다. 서인주 기자

김 위원장은 “마을 주택 대부분이 40~50평에 불과하다. 시골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당과 텃밭을 찾아보기 힘든데 예로부터 살기가 척박해 빈촌으로 불려왔기 때문” 이라며 “바다가 가까이 있지만 태풍피해가 잦아 양식이 어려운데다 주변 논마저 여유롭지 못해 가난이 대물림 되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상가에서는 영업권 보상 등 개발을 찬성하고 나섰지만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원주민들에게 전가된다” 며 “이주택지를 준다고 하지만 생계 능력이 없는 분들이 어떻게 집 짓고 투자해서 살 수 있겠냐. 다음주께 여수시장 면담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100여미터 떨어진 바닷가 주변은 안산암이 파도에 부딪치고 쓸리면서 검은모래를 연신 토해냈다. 검은모래는 신경통, 성인병 등 찜질효과가 좋아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고 있지만 정작 원주민들은 갈곳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마을주민 A씨는 “우리 마을은 가수 장범준이 해수욕장 아르바이트를 하다 ‘여수밤바다’를 만든 곳이다. 연간 1300만 외지인이 찾는 여수관광의 뿌리가 이곳에서 시작됐지만 정작 배경이 된 마을은 사라질 위기” 라면서 “도시개발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 등을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수년째 갈등만 커지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독] ‘여수밤바다’ 마을 가난한 노인들 내쫓길 위기
현수막 너머로 검은모래해수욕장과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서인주 기자

만흥택지개발사업 재검토 움직임도 감지된다.

주철현 여수 국회의원은 지난 7월 당정협의회에서 검은모래 해변과 연계한 관광배후단지 개발과 임대주택 건설 재검토를 건의했다.

정기명 여수시장도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업추진 현황을 면밀히 분석한 후 법률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정 시장은 변호사 출신이다.

주철현 국회의원은 “토지매입 등 사업추진에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 며 “무엇보다도 낮은 보상으로 독거노인에 대한 대책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지역민들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여수지역살리기본부 한 관계자는 “당초 만성리검은모래해수욕장은 부산 광안리 사례처럼 명품휴양단지 개발이 롤모델이었는데 첫단추를 잘못 낀 격” 라면서 “이대로 LH가 사업을 강행한다면 갈곳없는 독거노인들의 생활고는 커지고 지역발전은 퇴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독] ‘여수밤바다’ 마을 가난한 노인들 내쫓길 위기
만성리검은모래해변 마을은 가수 장범준이 아르바이를 하며 히트곡 '여수밤바다'의 배경 마을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