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 60대 여성 친 택시기사, 사고지점·기상상황 고려해 무죄

-무단횡단 50대 남성 친 회사원, 피해자가 이례적 행동...무죄

-法관계자, 일반국민들이 예상치못한 돌발상황에서 운전자의 과실책임을 직업법관에 비해 좁게 인정하는 경향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무단 횡단하던 보행자를 차로 친 택시기사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운전자가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진동)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택시운전기사 권모(75)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권 씨는 지난해 4월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 일대 편도 3차선 도로의 1차로를 달리다 무단횡단하던 A(여·61)씨를 차로 치었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고 충격으로 숨졌다. 검찰은 “운전자가 전방좌우를 잘 살피지 않은 과실로 사고를 냈다”며 권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배심원과 재판부는 “당시 사고발생지점과 기상상황을 고려했을 때 권 씨가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편도 3차선로가 왕복 6차선으로 합쳐지는 구간이었다. 전방에는 중앙분리대가 설치돼있었다. 주변에는 횡단보도가 없었고, 보행자 횡단을 막기 위한 울타리까지 설치돼있었다.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으리라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흐린 날씨로 인해 보행자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도 재판부의 고려대상이었다. 재판부는 “권 씨의 50m 뒤에서 쫓아오던 차량 운전자도 사고 직전까지 보행자 A씨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무단횡단 보행자를 친 운전자에게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엄상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모(46·회사원)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와 배심원은 “피해자의 행동이 극히 이례적이었다”며 운전자가 사고를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홍 씨는 2014년 9월 오후 2시께 서울 관악구의 한 사거리 교차로를 달리던 중 보행자 김모(51)씨를 치었다. 당시 보행자는 왕복 11차선 도로를 빠르게 달려 가로지르던 중이었다. 그는 반대편 6개 차로를 가로지르면서 레미콘차량 뒷바퀴에 부딪혔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어가다가 홍 씨의 차량에 부딪혔다. 보행자 김 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국민참여재판에 넘겨진 홍 씨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잇단 무죄판결에 대해 법원관계자는 “일반국민들이 예상치못한 돌발상황에서 운전자의 과실책임을 직업법관에 비해 좁게 인정하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