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 명이 바보가 되고 99명의 큰 웃음이 터지는 것보다 100명이 미소짓게 하는 게 낫다.”
모두가 박장대소한다 해도 단 한 사람이 불쾌하다면 그것은 좋은 개그가 아니다. ‘폭소클럽’에서 활동한 신상훈 코미디 작가는 2004년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코미디 작가상을 수상한 뒤 이 같은 수상소감을 남겼다.
TV에서 불쾌한 코미디가 넘쳐나고 있다. 외모 비하, 여성 혐오, 약자 조롱 개그가 여과없이 흘러나온다.
지난 3일 방송한 케이블 채널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개그맨 장동민은 ‘충청도의 힘’이라는 코너를 통해 한부모 가정 자녀를 조롱하는 콩트로 뭇매를 맞았다.
불과 5분 30초 짜리 코너였으나 파장이 거셌다. 공분이 일었고, 제작진은 사과했다. 장동민도 “대본대로 했다”는 단서를 달아 입장을 밝혔다. 코너는 폐지됐지만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한부모가정 권익단체인 ‘차별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엽합’에선 프로그램 제작진과 장동민 등 개그맨 3명, CJ E&M 김성수 대표까지 고소했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 개그에도 금기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한 파문은 불쾌한 웃음만 남겼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웃음거리의 소개로 힘 없는 사람, 차별받을 수 있는 사람을 소재로 삼으면 저질 코미디가 양산되고, 인권침해의 소재가 있으며 차별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라며 “코미디 업계의 PD, 작가, 개그맨들이 모두 이 같은 부분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 아무 생각없이 개그 소재를 찾는 것이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코미디 업계에서도 장동민과 프로그램에 등장한 개그 한 토막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비추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독한 개그가 쏟아진 이유에 대해 코미디언들의 세계의 특수성을 먼저 언급한다. 선후배, 동료 개그맨끼리의 관계는 상당히 긴밀하고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동안 함께 고생하며 쌓아온 친목 등으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 들이 알고 나누기도 한다. “개그맨들끼리는 다소 센 농담도 스스럼 없이 한다. 서로의 가족사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음 불편해하지 말라는 식의 반응도 많이 보이는데 문제는 그런 것들이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나왔다는 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개그맨은 “우리끼리 워낙에 독한 걸 많이 치다보니 불감증이 있다”며 “개그맨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대중이 볼 때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개그맨은 “국내 코미디는 사실 미국이나 일본 등과 단순비교를 해봤을 때도 수위가 부드럽고 제약이 많은 편에 속한다”며 “한국에선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정치, 종교, 섹스 등 3대 웃음포인트를 빼고 매주 콩트를 짠다. 특정 소재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개그맨들도 잘 알고 있는데 매주 치열한 경쟁 속에 소재를 찾다 보니 종종 선을 넘기가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터지겠다 싶을 정도로 할 말,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소재의 제약에 대해 윤리의식, 도덕성 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파장을 우려해 피하는 것이기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조절이 안 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반자로서의 안타까운 시각이 적지 않지만 ‘사회적 약자’를 겨냥해 웃음을 주려고 했다는 점에선 비난을 면하기가 어려워보인다. 많은 관계자들은 “몰랐다가 다시 봤는데 이건 아니다”라는 데에 의견을 함께 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지상파 방송사의 한 PD는 “코미디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희화할 수 밖에 없다. 희화화는 조롱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상황을 놓고 개그를 짤 때 누구나의 경험과 공감이 바탕한 상태에서 웃음을 주는 단계여야 한다”며 “과거 코미디, 남사당패가 부패한 탐관오리를 풍자, 비판해 웃음을 주는 방식이다. 다수의 공감이 바탕했기에 가능하다”고 말했. 이 PD는 “회화를 하려면 권력자, 국가를 상태로 해야 통쾌한 웃음을 줄 수 있는데, 대상이 사회적 약자로 향했다”라며 “보는 사람도 불쾌하고, 녹화현장에서 순간적인 웃음이 나왔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며 떠올릴 땐 불쾌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사회적 약자였나, 누군가는 걸렀어야 하는 것이 방송이 됐다. 제작진의 실수가 크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코미디 빅리그’에도 몸 담은 한 개그맨은 “‘코빅’이라는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투표를 통해 승패를 정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관객의 의존도가 높다”라며 “개그맨들을 마음것 풀어놓되 거름막의 역할을 해주는 제작진이 필요하다”고도 봤다.
업계에선 이번 일을 “깊이 있는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데다, 이 정도는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안일함, 큰 웃음을 주려는 조급함이 뒤섞여 현재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방송을 주무대로 삼는 코미디언들의 “시민적인 소양이 부족하다”(하재근 평론가)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코미디 빅리그’ 측은 결국 논란이 일었던 코너 ‘충청도의 힘’을 폐지했으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미 화려한 전력으로 약자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은 장동민을 향한 비난도 여전하다. 불쾌하고 불편한 코미디에 시청자가 등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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