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서 만세운동 벌인 김경순 여사 사천주재소 공격한 차정신 선생 등 후손에 귀감...숨겨진 독립운동가들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1919년 3ㆍ1운동이라 하면 우리는 언제나 유관순 열사를 떠오르기 마련이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갖은 옥고를 겪다가 옥사한 열사의 이야기가 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3ㆍ1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는 비단 유관순 열사만은 아니다.
3ㆍ1운동 당시 20세였던 김경순 여사는 강원도 철원군에 시위 소식이 전해지자 그 달 10~12일 간 철원역 등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열었다. 그는 당시 사립학교였던 정의학교의 교사로 만세 시위의 선두에서 활약했다. 특히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군중과 함께 철원군수에게 몰려가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김경순 여사는 일본 순사에 붙들려 9월 25일 징역 4월과 벌금 20월을 언도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은 그해 10월 14일의 기사에서 김경순 여사를 비롯한 철원군 독립만세 운동 참가자들을 ‘철원 독립군’이라고 표현하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경순 여사는 실제로는 6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김경순 여사 외에도 철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주도자 가운데 6명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어 독립운동에 여성이 활발하게 참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이같은 김 여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번 3ㆍ1절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한다.
1898년생인 차정신 선생은 평남 강서군에서 3ㆍ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이후 광동 중한협회 조직에도 참여했다.
차 선생은 1919년 3월 일본 헌병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학살하자 사천주재소를 공격하고 헌병을 처단해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까지 상해와 광동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사원 및 임시사료편찬회에 힘을 보태고 대한적십자회 자유대 대원, 중한협회 등에서 활동했다.
이후 그는 1925년 황포군관학교와 광동대사두비행학교에 들어가면서 무장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선다. 1926년 여월) 한국혁명군인회에서 활동하면서 한인 청년들의 중국 군관학교 입교를 후원했다.
정부는 이같은 그의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앞서 1995년 그의 아버지 차진규 씨는 사천 만세운동에서 일제의 총탄에 순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된 바 있다.
그외에 성낙중 씨는 1919년 3월 경기 용인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한 공로로, 이원근 씨는 같은 시기 황해도 장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공로로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과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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