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등대’… ‘人크루트 신화’ 쓴다

“평생 ‘직장’의 시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평생 ‘직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확신합니다. 직장의 규모ㆍ이름값 등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이 각자의 수준과 능력에 맞는 직업시장에 가능한한 빨리 진출ㆍ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취업 매칭 전문가’가 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1998년은 불과 한 해 전에 불어닥친 단군이래 최대 위기 ‘IMF 외환위기’로 한국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연세대학교 천문대기과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광석(41) 인크루트 대표가 술자리에서 주변 선ㆍ후배와 동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는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기업들의 줄도산과 정리해고로 실업자가 양산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극대화되던 시기었다.

이광석 대표의 사업도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했다. 이미 인터넷 업계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분류ㆍ정리하는 일로 인정을 받고 있던 그는 이력서 시장 역시 인터넷으로 옮겨올 경우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새 시장이 열릴 것이란 확신을 받았다. 그는 “국내 최초로 시작한 ‘인터넷 이력서’ 사업은 기존 종이로 된 이력서와 달리 학력, 경력 등 모든 내용을 제한없이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구직자들은 자신의 매력을 무한히 발산하고, 기업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인재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을 열어 젖힐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과 고민 끝에 만들어진 출범한 회사가 바로 국내 최초 인터넷 기반 취업포털 인크루트다.

컴퓨터에 빠진 천문학도, 신문 구인란을 최초로 인터넷으로 옮겨오다=국내에서 인터넷이 처음으로 상용화됐던 1994년, 우주의 형성 시기를 알고자 한 꿈 많았던 천문학도 2학년생이던 이 대표는 또 다른 우주를 컴퓨터 속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우주 공간 속 천체들의 움직임과 같이 웹상의 수많은 사이트가 연결돼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주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대표는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과 함께 국내에 처음 인터넷이 상용화됐던 1990년대 초반 활동했던 ‘IT 1세대’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는 문턱이 높았던 인터넷을 보다 쉽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 대표는 PC통신 나우누리에서 동호회 성격의 ‘인터넷 스터디 포럼(ISF)’의 운영자로 활동했다. 이를 통해 1996년에는 인터넷월드엑스포에 한국인의 경력과 연락망을 총망라한 ‘한국인센터’를 출품했고, 1997년에는 국내 최초 한영 디렉토리 서비스인 ‘집(ZIP!)’을 개발ㆍ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 서비스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출범할 당시 기본 데이터베이스(DB)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 대표는 인터넷 동호회로는 서비스 개발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알고는 큰 고민에 빠지게 됐다. 본업이던 천문학도로서의 삶은 내팽겨친채 인터넷에 매진한 자신을 발견한 뒤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처음 이같은 결정을 내린데는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라”라는 이 대표 아버지의 조언도 큰 몫을 했다. 아버지의 조언을 들은 바로 다음날 휴학서류를 낸 이 대표는 결국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이 대표는 “지난 1997년말 IMF 금융위기 이후 명퇴로 인한 인력감축 바람으로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시기였다”며 “회사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며,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인적자원과 일을 연결해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업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회사의 이름을 ‘인크루트’라고 지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사업의 기반이 된 ‘인터넷(internet)’과 모집ㆍ고용을 의미하는 ‘리쿠르트(recruit)’의 합성어다. 여기에 이 대표는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크루트라는 이름에 ‘사람 인(人)’과 리쿠르트의 합성어라는 의미도 더했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취업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이내 사명인 인크루트가 인터넷 기반 고용서비스를 나타내는 일반 동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취업포털업계 유일 창업자 CEO…전 분야ㆍ전 연령대 취업 매칭 전문가 될 것=‘업계 최초’ 수식어를 선점했던 이광석 대표는 이내 빠른 속도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에는 ‘뉴소프트기술’을 흡수합병하면서 코스닥에 상장, ‘주식 부자’ 소리까지도 들었다. 특히, 한 때 취업 포털 시장에서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견고한 아성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르게 찾아온 성공의 뒤에는 실패의 그림자 역시 함께 다가와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기가 침체되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0년에 이르러 처음 창업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인크루트를 분사, 상장 기업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을 거치며 이 대표는 취업 포털 시장 1위 자리를 경쟁업체에게 내주는 등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더 큰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취업의 본질, 구성원과의 소통도 우리의 본질인 인크루트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에 한우물만 파겠단 다짐을 하게 됐다”며 “취업포털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창업자 최고경영자(CEO)인 만큼 앞으로 이에 걸맞는 취업 전문가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 사업전략은 바로 기존 온라인ㆍ모바일 취업정보 서비스에 더해 오프라인 부문까지 강화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터넷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취업 및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고용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거나 취업준비생들이 취업과 창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취업학교, 창업학교 활동 등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연결’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사명에 충실해 취준생과 기업의 첫만남인 채용과정을 직접 운영하는 사업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시중은행의 경우 불과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의 채용 과정 전체를 인크루트에서 관할, 실시하고 있다”며 “이를 일반 대기업까지 확대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이광석 대표의 최종적인 꿈은 금전적인 성공보다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일자리 매칭 전문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다 의미있는 곳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최근 강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나 자신을 산다’라는 말이다. 이는 취업 준비 기준을 타인의 것에 맞추지 말고 나 자신에게 맞추라는 뜻”이라며 “주체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나만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나가는 주체적인 생각이야말로 현재 지속되고 있는 구직난을 뚫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고 조언했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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