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의식 관련 연구 또 연구 신부님과 닷새간 합숙하기도
인터뷰 도중 신부님과 살가운 통화 새영화 ‘검은 사제들’ 흥행 질주 “요즘, 직업인으로 인정받는 느낌”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깐깐하다. 강동원(34)은 대사 하나, 지문 한 줄도 무작정 외우는 법이 없다. 구마(사령을 쫓아내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예식)에 쓰이는 소금이 어떤 의미인지, 초를 켜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 지 꼭 알고 넘어가야 했다. 낯선 라틴어 기도문을 읊는 장면에선 ‘가짜 외국어로 얼버무려도 된다’는 회유도 있었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고 대충한다는 건 배우에게 용납이 안 되는 거죠.”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틴어가 종교적으로 갖는 의미가 큰데, 제가 어떻게 대충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가장 열심히 연습했죠. 라틴어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세 분 계셨어요. 라틴어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계신 분들이 드물다 보니, 저까지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계속 찾아보고 공부했죠. 그렇게 기도문의 의미를 다 파악하고 나서야, 녹음 파일을 무한반복으로 들으면서 계속 공부했어요.” 새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은 신학생 ‘최 부제’ 역을 맡았다. 여동생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그는, 김 신부(김윤석 분)와 함께 사령에 씌인 소녀를 도우며 한 뼘 성장한다. 스토리는 단조롭지만, 엑소시즘(구마) 의식을 극적으로 그려내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중이다.
강동원은 최 부제가 김 신부와 달리 신학생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해당 종교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하자고 마음 먹었다.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 (비종교인이 다수인)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도, 기도문을 외우거나 구마의식을 행하는 등의 장면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원도에서 닷새 간 실제 카톨릭 신부와 동고동락했다. 연기를 위해 합숙하는 건 데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와 친한 감독은 ‘그러다 메소드 연기하겠다’고 놀리기도 했다고.
“시나리오는 하루면 소화하죠. 그런데 (종교인의 마음가짐이) 상상한 걸로만 되는 게 아니니까, 신부님을 만나 이것저것 더 공부했어요. 사제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죠. 신부님이랑 지내면서 3일 째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다들 좋지 않은 일로 고해성사를 하러 올테고, 그걸 매일 접하면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을까’. 게다가 남에게 얘기할 수도 없잖아요. 제 말에 신부님이 ‘나는 귀를 빌려주는 사람일 뿐이야’라고 하시는데, 그제야 이 직업의 본질이나 태도에 대해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지난 10여 년 간 강동원은 ‘스타’였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외모가 그에게 신비주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는 단지 영화 연기에 매진했을 뿐인데,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출연이 없다보니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보니 최근엔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만으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알고 보면 그는 소처럼 일하는 배우 중 하나다. 일 년에 두 작품 씩은 꼬박꼬박 출연했다. 11개월 새 3편(‘두근두근 내 인생’,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의 작품을 소화했고, 또 다른 영화 ‘가려진 시간들’ 촬영에 돌입했다. 묵묵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린 그의 부지런함은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제 강동원은 ‘스타’ 아닌 성실한 ‘배우’로서 호감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끝나고 ‘검사외전’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일정이 좀 밀렸어요. 그 사이에 할 일이 없어져서 ‘할 일 없을까’ 그러고 다니니, 제작사에서 ‘검은 사제들’ 시나리오를 주시더라고요. 제가 광고 노출이나 이런 게 많지 않다보니, 다들 논다고 생각하시나봐요.(웃음) 최근 들어 ‘쉬지 않고 일하는구나’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예전부터 그렇게 일해왔는데, 올해 스케줄이 압축돼서 더 바빠 보이는 게 있죠.”
인터뷰 중간에 강동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양해를 구하고 살갑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강동원이 자문을 구했다는 신부님이었다. 이날 ‘검은 사제들’의 VIP 시사회가 예정돼 있었는데, 강동원이 이 자리에 신부님도 초대했던 것. 짧은 통화였지만 넉살과 여유가 늘어 보였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촬영 현장이 예전보다 한결 즐겁고 편해진 덕분이다.
“요즘 스스로 조금씩 성숙해지는 느낌은 있어요. 아마도 다른 분들이 저를 더 존중해주시고, 제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니가 뭘 알겠어’라는 식으로 상대가 대할 때는, 솔직히 대화하는 게 재미가 없었죠. 이제는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고 물어봐 주신다는 점에서, 직업인으로서 좀 더 인정받는 느낌이 있어요. 덕분에 쉬지 않고 싶어졌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