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무릎사과 파문확산 직장인 10명중 9명 피해경험 우리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백화점 귀금속 매장에서 점원 2명이 고객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 이른바 ‘인천 신세계 백화점 부릎사과’ 사건은 그 동안 많은 질타를 받아 온 우리 사회의 ‘갑(甲)질’ 행태가 별로 개선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 직장인 절반이 사실상 감정노동로 분류되고, 직장인 거의 전부가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는 점으로 볼 때 모두가 갑질을 당하면서도 갑질을 가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얼핏 갑질은 판매점이나 콜센터처럼 특정 영역의 노동자만 겪고 있는 특수한 문제라고 보기 쉽지만, 사실은 거의 모든 업무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광범위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의 ‘감정노동 근로자의 건강관리방안 연구(2014)’는 감정노동 연루 시간 등을 따져봤을 때 갑질에 취약한 감정노동자는 약 74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계산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41%에 달하는 것이다. 고객의 갑질과 큰 관련이 없어보이는 곳에서도 갑질은 도사리고 있다. 헤어디자이너 A(23ㆍ여)씨는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머리를 완전히 다시 하는 일이 많다”며 “고객이 무작정 싫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잡코리아가 직장인 600여명에 물었더니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88%)이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내일 출근하면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같은 관계사 직원의 무리한 요구(52.9%), “퀄리티는 뛰어나게, 비용은 저렴하게” 같은 고객사의 불가능한 요구(26.9%), “내가 너네 사장이랑 사우나에서…” 같은 인맥 자랑(16.8%) 등이 많았다.
문제는 이 설문 대상자 10명 중 3명(33.3%)은 갑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갑질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데에 우리 사회 갑질의 특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협력업체에 근무 중인 박모(32)씨는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어린 판매직원에 마구 짜증을 내며 욱했던 적이 있었다”며 “그렇게 욕하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구나 싶어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갑질이 누적될 경우 심각한 정서적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양한 언어폭력과 성희롱에 고스란히 노출된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조사한 결과, 자살 충동과 우울증이 일반 시민보다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2013년).
우리 사회에 갑질이 만연한 것은 갑질에 인식 부족하고, 기업과 조직 차원의 대응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밝힌 지난해 조사를 보면, 폭언과 폭행, 성희동 등을 경험한 유통서비스 종사자가 이에 대한 기업 차원의 해소 프로그램을 제공받은 비율은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 물론 일부 민간기업에서도 갑질 고객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NS 홈쇼핑의 경우 폭언을 일삼는 소비자는 따로 관리해 발신 번호를 원천 차단하고, 상습 악성고객은 ARS 통화가 불가능하게 했다. 애경산업은 상담사가 고객으로부터 유선을 통해 폭언과 성희롱을 당했을 경우나 강성 클레임을 상담했을 경우 1시간씩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지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