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자녀들의 키가 작아 걱정하던 A씨는 인터넷에서 키 성장제 광고를 보게 됐다. “1년 정도 섭취하면 5~7㎝ 자랄 수 있다”는 광고에 속은 A씨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자녀 2명분을 구입했다. 자녀들의 작은 키가 취업이나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이나 차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6개월 섭취 후 자녀들의 키는 단 1㎝도 더 자라지 않았다.
자녀의 키에 민감한 한국 부모들은 ‘키 크는 약’이나 각종 성장 영양제, 성장호르몬 주사, 키 크는 운동기구 등의 유혹에 유독 약하다.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거의 없고 각종 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아예 ‘키 크는 수술’을 알아보는 부모들도 있다.
자녀 키에 대한 부모들의 욕심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이 20대 남녀 평균 신장보다 더 큰 키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가 전국 19개 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찾은 환자의 보호자 1370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들은 자녀의 이상적인 최종 키로 아들 175㎝이상~180㎝ 미만(46.6%), 딸 165㎝ 이상~170㎝ 미만(54.6%)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아들의 경우 180㎝ 이상을 원하는 부모들도(42.7%)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그러나 부모들의 이같은 바람은 한국의 실제 20대 남녀 평균 신장을 웃도는 수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은(2013년 기준) 174.1㎝, 여성은 161.6㎝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자녀 키에 대한 부모들의 욕심이 우리 사회 키에 대한 ‘차별’을 우려한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조사에서 ‘자녀의 최종 키가 작을 때 우려하는 점’으로 부모들의 72%(복수응답)가 ‘구직 활동 등 사회생활에서의 차별’을 꼽았다. ‘친구 및 이성 교제 등 대인관계’(61%)에 대한 걱정은 그 다음이었다.
반면 ‘작은 키로 인해 걱정되는 부분이 없다’고 답한 부모는 5%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키 등 외모로 인해 받는 실제 차별과 불이익, 혹은 그럴 것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결과다.
전문가들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는 절박감이 키나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의 키나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적 맥락 속에서 내 자식이 어떤 것 하나도 부족하면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절박감과 경쟁 피로도, 부모들의 욕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키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은 인종차별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어 위험하다”며 “모델을 뽑는 게 아니라면, 사무직이나 연구직 등 신체 조건과 직무 능력이 관계 없는 직종에서까지 외모가 평가요소가 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adhone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