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우디아라비아 (하)

수다이리 가문 권력독주 속 왕좌쟁탈전 가문 내에서도 형제간·保革派간 갈등 현 국왕·왕세자 강력한 왕정체제 불구 형제상속의 원칙 깨 큰 반발…위기 봉착 국제유가 하락 경제난 등 여론 악화까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권력 중앙부인 ‘수다이리’ 가문과 다른 가문, 그리고 수다이리 가문 내의 갈등 등이 얽힌 복잡한 전쟁이다. 절대왕정인 만큼 왕좌를 향한 전쟁도 치열한 양상이다. 현 국왕과 왕세자, 부왕세자의 권력이 강력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난과 지지부진한 예맨 공습 등으로 인한 여론악화는 왕좌에 도전하는 개혁파에게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올 초 즉위한 살만 국왕은 ‘수다이리’ 일곱 왕자 가운데 여섯째다. 형제상속의 원칙을 따른다면 다음은 아흐메드 왕자다. 하지만 살만 국왕은 왕세자에 조카인 나예프 왕자를, 부왕세자에 아들인 살만 왕자를 임명한다. 처음으로 건국왕 이븐 사우드의 손자들 가운데 왕위계승자가 나온 셈이다. 나예프의 아버지는 수다이리 왕자들 중 네번째로 압둘라 국왕 때에 왕세제에까지 올랐으나 2012년 사망했다.

문제는 졸지에 왕위계승 서열에서 밀려난 아흐메드다. 그리고 그 동안 수다이리 가문의 힘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다른 왕자들과 왕족들도 이 기회를 틈타 살만 국왕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최근 익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은 가디언 지에 “탈랄왕자와 아흐메드 왕자, 투르키 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는 투서를 했다. 이들 셋은 모두 살만 국왕이 불만이 많을 만한 인물들이다.

투르키와 아흐메드는 수다이리의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 아들이다.

투르키는 일찌감치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왕실이 반대하는 결혼을 위해 국방부 차관이라는 요직을 버리고 1978년 이집트로 망명 길에 올랐다. 지난 2010년 사우디 왕실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권이라고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사우디왕실은 조작된 일이라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2012년 2월부터 11월까지 내무부 장관까지 역임해 유력한 왕위계승후보로 떠올랐으나 결국 형 살만 국왕에 의해 후보에서 밀려났다. 때문에 ‘형제 상속’을 깨뜨린 살만 국왕에게 가장 크게 반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탈랄 왕자는 수다이리 출신이 아니다. 탈랄 왕자의 동복 형제 가운데는 왕위에 오른 이도 없다. 외가의 세력이 미미해서다. 하지만 민주단체를 결성해 입헌군주제 등 민주화를 주창하다 추방까지 당해 일찌감치 왕실에서 멀어졌다. 이 때문에 ‘개혁’이란 명분에 적합하다.

나예프 왕세자는 내무장관 살만 부왕세자는 현재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내부무는 최근 메카 성지순례객 사고에 책임이 있고, 국방부는 지지부진한 예맨 공습을 주도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사우디 경제와 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살만 국왕과 왕세자, 부왕세자를 몰아붙일 만한 환경이다. 하지만 수다이리 가문은 오랜 기간 권력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특히 군권을 놓지 않고 있다. 사우디에서 군권은 왕좌에 가장 가까운 권력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헤지즈 왕국, 샴마르 왕국과 네즈국, 라쉬드 가문 등 다양한 부족을 무력으로 제압했다. 샤리아 법에 근거한 왕실의 강경통치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잇따라 속출했지만 이를 제압한 것이 국방방위군이었다.

수다이리 출신이 아닌 제3대 파이잘 국왕은 모친인 알 앗 셰이크가 와하비즘의 후손세력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교리와 석유부를 장악할 정도로 힘이 막강했다. 그럼에도 사우드 국왕을 끌어내리고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군권을 쥐고 있던 수다이리 출신의 파드, 술탄 형제와 손을 잡았다. 제4대 칼리드 국왕은 외가인 질루이 가문이 수다이리 가문의 한 갈래였다. 왕위를 양보했던 친형 무함메드가 이콴 특공대를 총괄하는 등 국방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던 것도 힘이 됐다.

칼리드 국왕 때 이미 실권은 수다이리의 맏이인 파드가 휘둘렀었다. 일찌감치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했던 파드는 부왕세자를 맡으면서 왕좌에 다가간다.

그리고 파드 국왕이 즉위하면서 수다이리의 시대가 열린다. 그는 왕족이 석유장관에 오르는 것을 금지, 석유에 대한 왕의 권리를 확보했다. 이 때부터 수다이리의 힘은 셰이크 가문 등 라이벌을 압도한다. 파드 국왕은 1992년 기본법을 통해 왕위 계승자 후보 선정권한도 오로지 국왕에게만 부여했다.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파드 국왕의 자리가 수다이리 가문 출신이 아닌 압둘라 국왕에 돌아간 것도 군부의 힘이다.

소수세력 가문 추신의 압둘라 국왕은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1995년부터 국무를 대행하면서 군권을 확보했다. 압둘라가 국왕에 올랐을 때 크게 반발하는 이들도 없었다. 내무부와 국방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수다이리 출신 왕자들도 압둘라 다음 왕위는 다시 자신들에 돌아올 것을 확신했다. 실제 압둘라 국왕 때 후계자들은 모두 수다이리 출신으로 임명됐고, 올해 왕위를 이은 것도 살만 현 국왕이다.

결국 수다이리 가문은 건국왕 이븐 사우드 사후 60년 가까이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바탕으로 사우디의 권력을 독점해 온 셈이다.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