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눈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정치적 비극으로 남녘과 북녘에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흐르는 시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여잡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에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이 되는 시민들은 점차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세월이 가로막은 이산상봉의 꿈=한때 13만명 가까이 달했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최근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분단 60년이 넘어서면서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7만1503명으로, 언제 들려올지 모르는 북녘의 가족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201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중단된 4년간 이들은 뼈를 깎는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미 6만명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하나된 조국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 가족들과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한국전쟁 당시 20~30대 청년이었던 이들에게 분단 60년은 너무도 길고 고통스런 시간이다.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추진될 당시 상봉을 신청했던 남측 인원 100명 중 85명만이 이번 상봉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도 대부분 건강상의 이유로 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남은 생존자들 역시 절반 이상이 80~90대의 초고령층인 점을 감안하면 북녘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정례적 상봉과 서신교환 등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장 때문에, 교육 때문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른바 ‘기러기 가족’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생겨난 대표적인 신(新) 이산가족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 중 타지에 따로 나가 사는 구성원이 있는 가구는 2000년 63만3000가구(5.9%)에서 2010년 115만(10%)가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부모 중 한쪽이 동행하는 조기유학이 기러기 가족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례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상사 주재원이나 사업 등 이유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전체적으로는 더 많았다.
그러나 국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지내는 경우로 초점을 좁혀보면 경제적인 이유보다 학업 때문인 경우가 두 배 가까이 많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한국 교육을 벗어나는 동시에 영어 등 어학 능력을 조기에 키워주려는 부모들의 욕구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판 고려장, 독거노인=독거노인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이미 5명 중 1명의 노인은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다. 2035년이 되면 4명 중 1명이 될 전망이다. 이들 중에는 단순히 자녀들과 거주만 따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로 여유가 없거나 같이 살기를 거부하면서 어쩔 수 없이 외딴 섬이 돼버린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의 추정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고독사 예비군으로 분류되는 ‘위기노인’은 2012년 기준으로 9만5000명 수준이다. 주변과 일부 교류는 있지만 여전히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는 취약노인도 20만5000여명에 이른다. 특히 남성보다 긴 평균수명으로 할머니들이 홀로 남는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은 신체적 능력이 남성에 비해 떨어져 그 어려움은 더 크다. 이에 따라 한국인구학회는 “지난 수십년간 젊은 층이 대규모로 전출한 농촌에 사는 노인들,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여성 노인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혼자가 편해” 늘어나는 1인가족=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는 것은 비단 노년층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선택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1인가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4분의 1은 ‘나홀로족’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결혼 등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이들 나홀로족도 크게 보면 새로운 이산가족의 한 단면이다.
나홀로족의 증가는 소비시장의 모습도 바꿔놨다. 중대형 평형이 대세이던 주택시장은 소형 중심으로 재편됐고,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벽에 거는 세탁기, 소형 전기밥솥, 로봇청소기 등도 이들이 주 타깃층이다.
원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