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허들을 없앴다고 하면서 또 다른 허들을 하나하나 더 쌓아서 검증하려고만 하니 제대로 된 핀테크가 이뤄지겠는가” 지난 18일 금융위원회의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 허용에 대해 한 핀테크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핀테크(Fintech)를 옥죄는 ‘낡은 허들’(대면 확인)을 없애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허들(열거주의식 비대면 실명확인+권고사항)을 만들고 있다는 애기다.

오는 12월부터 계좌개설 시 반드시 은행창구에서 ‘대면확인’을 거치던 종전 방식에서 창구에 가지 않고도 영상통화 등으로 실명을 확인하는 ‘비대면 확인’으로 바꾸겠다는 금융당국의 정책이 오히려 열거주의(포지티브)식 규제 중심의 틀을 양산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은행을 활성화하고 금융시장에 역동성을 불어 넣기 위해선 ‘편의성’과 ‘자율성’이라는 양대 산맥이 중요한데 최근 일련의 금융정책은 오히려 이같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오는 12월부터 도입되는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은 ▲신분증 사본제시 ▲영상통화 ▲현금카드 등 전달 시 확인 ▲기존 계좌 활용 4가지다. 금융위는 특히 이 4가지 방식 중 2가지를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고, ‘금융회사 자체적으로 추가 확인방식을 적용해 여러 단계의 검증과정을 거친 후 계좌개설’ 방안을 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가능한 것만 정해주는 포지티브형 규제는 오히려 금융산업을 더 옥죄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원칙중심의 포괄주의 규제로 가야하는 데 최근 일련의 정책들은 오히려 이같은 흐름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법규에는 추상적인 실명확인 의무만 규정하고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비대면 확인방식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모바일 기기 발전, 본인 확인 관련 기술개발 추이를 자유롭게 반영해 금융회사별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이 활용이 가능하도록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의 틀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포지티브 규제를 양산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개혁이라는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며 “그러다보면 금융사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금융규제의 틀을 바꾸겠다고 만든 ‘금융개혁회의’가 오히려 금융닥국의 정책에 면죄부(?)를 주고 형식적인 의결참고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검증된 주요 방식을 열거해 제시하되, 이에 준하는 새로운 방식의 개발ㆍ사용도 허용(권고사항)한 것을 놓고도 ‘옥상옥’의 또 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한 실무자는 “과거엔 은행 창구에서 대면으로만 확인하면 됐던 것을 오는 12월부터는 이중삼중의 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권고사항이 또 다른 행정지도라는 규제가 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은행들은 결국 정부가 제시한 두 개 확인방법 이외에 새로운 방법을 또 만들어서 실행할 수 뿐이 없는게 뻔한데, 일선 현장에선 그만큼 번거로움만 가중되는 꼴이다”고 토로했다. 금융사 입장에선 자율성을 침해하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도 ‘옥상옥’의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핀테크 업체 한 관계자도 “정부는 고객확인 관련 기술을 개발중인 핀테크 업체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해 국내 경험을 발판으로 해외진출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며 “기술중립성 차원에서 권고사항을 두기는 했지만, 금융사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형식적인 실명확인 방안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핀테크를 육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금융사의 자율적 재량을 높여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


hanir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