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둔감한 사회에 대한 경종 ‘트래쉬’
불의에 둔감한 사회에 대한 경종 ‘트래쉬’
부정부패와 비리는 국경이 따로 없습니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이 차례로 검찰을 들락이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죠. ‘갑(甲)질’로 불리는 가진 자의 횡포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영화 ‘트래쉬’에서 묘사된 브라질 사회는 기시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합니다. 정치인은 공권력을 개인 비서처럼 부리며 부정한 재산을 쌓고, 경찰은 비리 정치인과 결탁해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쁩니다. 교도관 역시 뇌물의 달콤함에 취해 있죠. 권력의 크고 작음을 떠나,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졌다면 일상적으로 편법과 불의를 저지릅니다. ‘트래쉬’(Trash)의 사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쓰레기장’인 셈입니다.
실제로 쓰레기장 마을에 사는 주인공 세 소년은 버려진 물건을 주워 팔며 살아갑니다. 평소처럼 쓰레기를 줍던 라파엘(릭슨 테베즈 분)은 우연히 지갑을 줍습니다. 거기서 지폐 몇 장과 암호 같은 숫자가 적힌 사진, 그리고 의문의 열쇠를 발견하죠. 그 지갑을 백방으로 찾는 경찰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은 라파엘은, 친구 가르도(에두아르도 루이스 분),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분)와 함께 지갑에 담긴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사실 지갑의 주인은 목숨을 걸고 어떤 비밀을 폭로하려다 희생됐습니다. 그 뒤엔 역시 권력자가 버티고 있었죠. 소년들은 지갑 주인이 남긴 암호를 풀고,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가까워지면서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라파엘에게 줄리아드 신부(마틴 쉰 분)는 진심으로 충고합니다. “저들과 싸워봤자 비참해질 뿐이야. 아님 죽거나.” 소년들이 어떤 사명감에서 위험을 감수한 것은 아닙니다. 부패한 경찰에 대한 반항심에서 지갑을 내놓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됐죠.
지갑에 담긴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협박에 시달리고, 납치와 폭행까지 당하면서 그들에겐 알 수 없는 오기가 솟아납니다. 자원봉사자 올리비아(루니 마라 분)는 소년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죠. 가르도는 서툰 영어로 분명하게 말합니다. “Because It’s right.”(왜냐하면 그게 옳으니까요).
이 명쾌한 답변에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소년들처럼 ‘옳은 것’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았다면, 우리 사회의 병폐가 지금보단 덜 했겠죠. 14세 소년도 의연하게 따르는 정의를 우리는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옳은 일 앞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하는 순간을 더 자주 마주합니다. 문득 불의에 둔감해진 스스로의 모습에 두려워지기도 하죠. ‘트래쉬’의 소년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에서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곱씹게 합니다.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이제 영화를 본 어른들이 정당해질 차례인 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