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올해 첫 천만영화 타이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역대 외화 최단 기간 천만 기록도 쓸 전망이다. 국내에선 천만 영화가 일년에 한 두 편은 나오다 보니, 이 스코어가 더이상 신기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대한민국 인구 5명 중 1명 꼴로 ‘어벤져스2’를 본 셈인데, 극장을 찾지 않는 인구(영아, 환자, 초고령 인구 등)를 제외하면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수치다.
‘어벤져스2’가 흥행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마블의 인기 슈퍼 히어로를 한 자리에 모은 데다, 전작 ‘어벤져스’(701만 명)의 흥행 후광도 등에 업었다. 마블 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를 들여 볼거리까지 풍성하다. 그럼에도 천만영화가 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요건이 있다. 바로 충분한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 개봉 첫 주말, ‘어벤져스2’는 1800개 이상 차지하며 전체 스크린(2281개)의 80% 가량을 휩쓸었다. 하루 1만 번 이상 상영된 날도 있었다. 개봉 4주차에도 1200여 개 상영관에 걸려있다.
물론 스크린 독과점은 할리우드 외화 만의 문제가 아니다. 메이저 배급사를 등에 업은 한국 영화의 경우, 상영관 수는 물론 상영 횟수, 상영 시간대 등에서 노골적인 혜택을 입는다. 역대 흥행 1위작 ‘명량’은 지난 해 최대 1587개 상영관에서 7963회 상영(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되며, 스크린 몰아주기라는 눈총을 샀다. 할리우드 영화, 한국 영화를 떠나 한정된 상영관을 독식하면, 나머지는 배를 곯을 수 밖에 없다. ‘어벤져스2’ 개봉 당시, 스무 편이 넘는 상영작이 고작 400여 개 스크린을 나눠가졌다.
▶작품성 뛰어나다는데…대체 어디서 보나요?=‘어벤져스2’가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지난 7일, 해외 영화계의 이목을 끈 작품들이 대거 개봉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윈터슬립’을 비롯,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신작 ‘엑시덴탈 러브’,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NN 관객상을 수상한 ‘모두의 천사 가디’ 등이다. 개봉 첫 날 ‘엑시덴탈 러브’는 86개 스크린에서 174회 상영됐고, ‘윈터슬립’과 ‘모두의 천사 가디’는 각각 22곳(27회 상영), 16곳(22회 상영)에서 상영되는 데 그쳤다.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상영관 한 곳 당 1회 가량 상영한 셈이다.
개봉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엑시덴탈 러브’와 ‘윈터슬립’의 서울 지역 상영관은 각각 5곳, 6곳 만이 남았다. 그 마저도 하루 1~2회 상영하는 게 고작이다. ‘윈터슬립’의 경우 지난 12일 CGV 강변, 구로,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상암, 압구정, 여의도에서 1회씩 상영됐는데 모두 22시 이후 시간 대였다. 평일 22시 이후 배정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웬만한 열혈 관객이 아니고야 택시비까지 들여가며 평일 심야영화를 볼 리 만무하다. 롯데시네마의 경우 ‘엑시덴탈 러브’가 상영 중인 서울지역 극장은 홍대입구, 건대입구 두 곳에 불과했지만, 각각 2회, 4회 상영으로 CGV보다 관람 여건은 나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주말 상영 시간표에선 CGV, 롯데시네마 어디서도 두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 개봉 한 주 만에 극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윈터슬립’ 관계자는 “‘어벤져스2’로 한바탕 성수기 치르고 관객들이 쉬는 타이밍이라 스코어가 더 지지부진한 것 같다”며 “예술영화 상영관을 보통 30곳 내외로 잡긴 하니 예상보다 많이 적진 않았는데, 불편한 상영 시간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많다. 그래도 예술영화관보다 CGV를 통해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 훨씬 많다 보니, 우리 입장에선 뭐라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들보다 앞서 ‘어벤져스2’ 개봉에 직격탄을 맞은 영화는 ‘약장수’(감독 조치언ㆍ제작 ㈜26컴퍼니)였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개봉 첫 주 200곳 이상 상영관을 확보하며 안도했지만, 흥행세가 미미하자 곧바로 극장에서 사라졌다. 개봉 6일 차 278곳이던 상영관은 7일 차 185곳으로 하루 만에 100여 곳이 줄었다. 8일 차엔 전국에서 단 14곳 남았고, 서울 지역 극장에선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반면 ‘어벤져스2’는 개봉 4주차인 지난 12일을 기준으로 CGV 용산 11개 관(IMAX 3D, 4DX, 골드클래스 등 특수관 포함) 중 7개 관을 차지했다. 다양성 영화 상영관인 ‘아트 하우스’를 포함한 신촌 아트레온의 경우에도 총 9개 관 중 4개 관이 ‘어벤져스2’의 몫이었다.
▶“한 영화가 상영관 절반 이상 독식, 해외에선 불가능”=그렇다면 해외 극장가의 사정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처럼 특정 영화가 한 극장의 상영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의 경우 상영관 수가 12개 이상인 멀티플렉스는 영화 한 편을 최대 2개 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 또 영화진흥기구인 국립영화센터와 극장업자 간의 협약에 의해, 한 작품이 전체 상영관 수의 30% 이상을 차지하지 않도록 한다. 실제로 프랑스의 극장 체인 UGC의 경우, 파리 내 13개 지점 대부분이 ‘어벤져스2’에 1개 관 만을 내줬다. 2개 관을 차지한 곳은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점이 유일했는데 일반 상영과 3차원(3D) 상영, 두 가지 버전을 걸어둔 탓이었다. 특히 UGC에는 할리우드 영화 뿐 아니라, 자국 영화, 제3세계 영화 등이 다양하게 마련됐고,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1984)와 같은 추억의 명작도 상영 중이었다.
미국은 1920~30년대 영화 산업이 커지면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영화 제작과 배급은 물론, 주요 극장까지 소유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극장에서 특정 영화를 독점적으로 상영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벌어졌다. 이에 법원은 1948년 영화산업의 수직 통합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5개의 메이저 스튜디오 소유의 극장을 매각하도록 했다. 1980년대 규제 완화를 거치면서 미국에선 여전히 일부 수직계열화는 존재한다. 다만 극장의 영향력이 크지 않고,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스튜디오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특정 영화의 스크린 과점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앞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던 영화는 ‘아이언맨3’(2013)로, 당시 1만3200여 곳에서 상영돼 전체 스크린의 33% 가량을 점유했다.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부장은 “한국의 경우 극장 체인 3개가 전국 2300개 상영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의 시장이 거의 단일 시장화 된 셈”이라며 “미국은 일단 극장 체인의 수가 많고, 50여 개의 주가 다 다른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한 시장에서 운영되는 극장이 몇 개 있으면 상영 조건을 두고 경쟁이 붙기도 한다. 더 좋은 조건을 내거는 쪽에 영화를 주는 식이다. 따라서 미국에선 특정 영화가 전역에 깔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좋으면 볼 사람들은 본다’고?=다양성 영화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면, 큰 극장들이 내놓는 단골 멘트가 있다. ‘영화가 좋으면 볼 사람들은 본다’는 말이다. 반대로 이는 스크린을 독식한 블록버스터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영화가 좋으면 1800곳에서나 상영하지 않아도 볼 사람들은 기다렸다가 찾아 본다.
고질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영화 산업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관객들이 찾는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는, 모든 영화인에게 흥행 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라는 소리나 다름 없다. 실제로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뒤 어쩔 수 없이 상업영화에 눈을 돌리는 감독들도 많다. 이런 식으로 문화의 다양성이 차츰 훼손된다면, 영화 산업의 건강한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제2의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도 나올 수 없다. 우선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상영 기회를 가져야, 그 과정에서 흥행 영화도 나오고, 작품성 있는 영화나 문제적 작품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몇 년 전 ‘괴물’을 시작으로 ‘인터스텔라’를 거쳐 ‘어벤져스2’ 이르면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더 심화됐다. 외국 영화, 한국 영화를 떠나서 독과점이 심각하다는 문제 인식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라며 “특정 영화에 스크린이 쏠리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극장 입장에선 매출을 극대화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법적 규제가 없다면 지금까지처럼 그저 성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그칠 수 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스크린 수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선,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정 영화가 한 극장 스크린 수의 30%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이다. 스크린 독과점의 피해를 보는 건 중소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영화산업이 위축되면,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즐길 기회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최소한 극장에 2주 정도는 걸려서 입소문이 날 시간은 줘야 ‘영화가 좋으면 볼 사람은 본다’는 말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넋두리했다.
이혜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