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폭언·일부선 고용착취…“한때 자살충동” 45%나 보험료 비싸 가입 엄두 못내…관련법 제정·제도 마련 시급

법과 제도의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있는 대리운전기사의 시름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밖으로는 손님들의 폭언에 자살충동을 느끼고, 안으로는 고용주로부터 각종 비용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리운전과 관련한 법과 제도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KTX 하루 이용객의 3배가 넘는 48만명이 매일 대리운전을 이용하고 있고, 8만명 이상이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고 있지만, 이들을 각종 불합리한 행태에서 보호해줄 수 있는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대리운전 경력 2년차 이모(49)씨는 지난 3월 30대 회사원 두 명을 서울 종각역에서 태웠다. 신촌에 들렀다가 목적지인 일산으로 가자는 요구에 이 씨는 경유지가 있을 경우 5000원의 추가로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젊은 손님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이씨는 운전내내 “우리는 나잇살 먹고 남의 차 운전하지 말자” 등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 꾹 참아야 했다.

이씨는 “대리운전은 밀폐된 공간에서 주로 술 취한 손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몸은 둘째 치고 마음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평소 자신이 다니는 길로 가지 않는다며 운전 내내 욕설하는 손님, 자신의 위치를 잘 찾지 못한다며 행패를 부리는 손님, 잔돈을 동전으로 던지는 손님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런 행태의 폐해다.

연세대 의대가 대리기사 166명의 직업환경을 면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손님으로부터 10회 넘게 폭언을 들은 경우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자가 절반(45.3%)에 육박했다.

지난 1년간 폭언을 경험한 비율은 90%에 달했고, 폭행을 당한 비율도 절반에 가까운 41%나 됐다.

윤진하 연대 의대 직업환경의학 교수는 “대리운전기사는 운수업의 특성뿐 아니라 감정노동, 야간노동의 요소를 갖고 있다”며 “이들의 노동 환경 개선 문제는 사회 안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인 데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베일에 가려진 대리운전자보험료 문제다.

협회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반드시 대리운전자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시장의 80∼90% 점유하고 있는 삼성화재, 동부화재, LIG보험 등이 보험료를 50% 이상씩 인상했다.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 이유에 대해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료가 많아 적자를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숨에 보험료를 50% 넘게 올리는 것은 비정상적 처사”라고 협회 측은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관계법상 업체에서 건당 돈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리운전업체 설립에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어 불량 업체들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대리업체는 3851개, 대리기사 수는 약 8만7000명이다. 대리운전 이용자는 하루 평균 48만명이다.

대리기사들은 한 달 평균 200만원을 버는데 대리업체에 수수료(수입의 약 20%)를 내고 보험료, 교통비 등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약 15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대리운전업을 감시하거나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30여년 전인데, 관련 법이나 제도가 없어 시장이 왜곡될 만큼 왜곡됐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관련법이 4개나 발의됐지만,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