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검진에 쓰이는 플라스틱 팁 개인 치과 60~80%가 다시 활용…멸균과정 없이 단순 세척도 일부는 철사가 녹슬때 까지 사용…관련규정 전무…대책 마련 시급
치과 치료 중 환자 입안에 집어넣고 고인 침과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데 쓰는 일회용 ‘석션팁’을 다른 환자에게 간단히 세척만 하고 재활용하는 치과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본지 취재에 협조한 현직 치위생사와 치과의사 등 6명은 “개인이 운영 중인 치과 10곳 중 6∼8곳은 일회용 석션팁을 재활용해서 여러 번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24일 의료업계에 따르면 석션팁은 메탈과 플라스틱 2가지 종류로 나뉜다. 메탈은 세척ㆍ멸균을 통해 원래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다. 주로 큰 수술에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 환자들에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큰 수술을 제외한 나머지 치료ㆍ검진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플라스틱 석션팁이다. 이것은 일회용이다.
문제는 상당수 치과들이 비용을 절감하려고 ‘남의 입에 들어갔던’ 이 일회용 플라스틱 석션팁을 다른 환자들에게 심한 경우 수십차례 재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무 1년차인 치위생사 A(여) 씨는 “현재 재직 중인 치과에서 플라스틱 석션팁을 재사용하고 있다”며 “세척을 하고 멸균을 하긴 하지만 재사용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근무 1년차인 다른 치위생사 B(여) 씨도 “많은 병원을 다녀보지 않아 확언하기 어렵지만 개인병원 10곳 중에 일회용 석션팁을 한 번만 사용하는 곳은 2∼3곳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재활용의 횟수는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3년차 치과의사인 C(여) 씨는 “심지어 일회용 석션팁 안에 들어간 내부철사가 녹슬 때까지 사용하는 의사도 봤다”고 했다.
재활용 시 석션팁을 멸균하지 않고 간단히 세척만 하는 치과도 상당수다.
치위생사 B 씨는 “제품의 내구성을 고려해 일회용 석션팁을 멸균기에 돌리지 않고 그냥 세척만 하고 재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일회용 석션팁 제품 박스나 개별 포장지에는 한번만 사용하라는 의미의 ‘single use only’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고,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도 따로 들어가 있다.
개업 3개월차 치과의사 D 씨는 “석션팁 판매업자들이 오히려 의사들에게 ‘재사용은 하지 말아달라’며 주의를 주기도 한다”고 개탄했다.
이렇게 일부 치과들이 일회용 석션팁을 재활용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다.
D 씨는 “가볍게 검사만 하고 가는 환자에게 석션팁, 장갑, 위생비닐 등 모든 일회용품을 규정대로 한 번씩만 사용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적자가 난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취재에 응한 종사자 대부분은 대학병원이나 정부지원을 받는 의료기관은 비용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일회용을 여러 번 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치과 10곳 중 6∼8곳은 일회용 석션팁을 사용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석션팁 판매가격은 100개당 약 6000∼20000원으로 저렴한 것은 1개 60원 정도다.
정작 문제는 감염 위험이다. 김각균 서울대 구강미생물학 교수는 “오염된 석션팁이 치료에 사용되면 환자는 바이러스나 곰팡이 균에 노출될 수 있다”며 “심하면 B형 간염처럼 혈액을 매개로 감염되는 질병이 석션팁을 통해 옮겨질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관련 규정은 전무한 실정이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33조는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처치에 사용되는 기구 및 물품(1회용품은 제외한다)은 소독하여 사용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법령을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내부 검토 중에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치과의료기관 감염관리프로그램’ 역시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할 기구로 일회용 석션팁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어긴다고 처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사용 여부는 전적으로 의사들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영채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회원들이 감염 가이드라인과 위생환경을 철저하게 잘 준수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치과를 찾는 시민들도 석션팁이 일회용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설사 안다고 해도 치료 과정에서 재사용된 석션팁인지 알아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지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