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판교)=서지혜 기자] “이거 회사 꺼에요. 바쁠 땐 임원들도 자주 타는데…”
카카오에 근무한다는 한 직원이 능숙한 솜씨로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미팅이 있는데 지각할까봐 회사내에 ‘주차’돼 있던 킥보드를 타고 나왔단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중년남은 구내식당에서 조카뻘 직원들과 앞뒤로 줄을 서서 식판에 음식을 담는다. “실례지만 누구신지?”라고 물으니 “여기 사장입니다”란 답이 돌아온다.
여기는 판교테크노밸리다. 창조경제의 시대, 이곳 기업들의 탄력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업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30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판교테크노밸리는 수평적 관계, 탄력적 의사결정, 자유분방함의 3가지 키워드로 한국형 구글, 페이스북이 되기 위해 진격하고 있었다.
모든 CEO가 그럴까 싶어 게임 개발사 블루홀스튜디오를 찾았다. 액션 RPG ‘테라’로 게임 한류의 선봉에 선, 직원 숫자만 180여명에 달하는 개발 전문 스튜디오다. 대표이사실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일반 개발자들과 마찬가지로 파티션이 설치된 책상에 장병규ㆍ김강석 대표의 이름표와 함께 대표들이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웬만한 중견기업만 되도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주차공간이 따로 있지만 판교에선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출근길부터 근무시간은 물론, 점심 때도, 야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사장은 물론, 임원들과 직원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탄력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가능한 모든 직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특정이다. 여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는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이 신속하게 이뤄진다.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창업 초기 12명의 직원들을 4명씩 3팀으로 나눠 소통과 관련한 앱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각각 시작했고 이후 가장 잘 될 것 같은 카카오톡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 프로젝트를 모두 정리했다”며 “직원이 많은 기업에서는 이런 빠른 의사결정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앞서 언급한 킥보드가 8대다. 직원들은 실외 뿐 아니라 회의실 이곳저곳을 킥보드로 이동한다. 직원 중 한명이 킥보드를 들고 와서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유용하다고 생각한 다른 직원들이 따라하기 시작했고 회사에서 직접 구매해 배치한 것이 ‘카카오 킥보드’의 시작이었다.
청바지와 킥보드로 대표되는 판교테크노밸리의 기업문화는 대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IT기업들이 모바일 트렌드에 맞춰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자유분방한 임직원들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건 조직이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회사가 커질수록 이런 문화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최근 IT회사들이 모바일로 조직을 세분화하고 있어 빠르고, 자유분방하며, 실용적인 ‘판교 스타일’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