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게임업계 양대 공룡의 경영권 전쟁에 업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회자될만한 스토리들도 다양하다. 기업 인수합병으로 게임계 역사에서 ‘신화’가 된 김정주 넥슨(넥슨 창업자) 대표와 RPG 게임의 새 지평을 연 ‘리니지’ 개발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대결이라 더 흥미 진진하다. 뒤통수를 때린 넥슨과 어이없어하는 엔씨소프트측의 반응도 회자될만한 요건을 충족시킨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역시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다.
▶동지에서 적으로. 서울 공대 선후배 30년=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자수성가, 1조원대 돈방석, 게임업계 거물, 출신학교 등에서다. 벤처기업인 1세대라는 점도 유사하다. 반면 회사를 키운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김정주 대표는 기업 인수 합병으로, 김택진 대표는 여전히 게임개발을 직접 담당한다. 넥슨을 뭐든지 집어삼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했던 괴물 ‘가오나시’에 비유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반면 김택진 대표는 최근까지도 개발중인 게임을 직접 해보는 게임 마니아다.
우선 학교부터 보자.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나란히 서울대 공대 출신이다. 김택진(67년생)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 김정주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김택진 대표가 한 학번 위 선배인 셈이다. 그들이 연을 맺은 지 대략 30년만에 완전히 결별의 수순으로 들어선 것이다.
게임사를 먼저 세운 측은 김정주 대표다. 언론 노출이 거의 없어 ‘은둔형 오너’로 불리는 김정주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지난 1994년 12월 넥슨을 설립했다. 그를 일약 돈방석에 앉힌 게임은 ‘바람의 나라’다. 1996년 정식 서비스에 들어간 ‘바람의 나라’는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네오플, 게임하이 등 굵직굵직한 게임사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김택진 대표는 현대전자에서 근무하다 지난 1997년 3월 NC소프트를 창업했다. 그를 돈방석에 앉힌 게임은 ‘리니지’다. 1998년 9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현재까지도 엔씨소프트 매출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효자 게임이다.
▶경영권 분쟁 열쇠.. 국민연금에 물어봐= 싸움이 벌어졌으니 이젠 누가 이기느냐가 관심거리다. 경영권 전쟁의 전장(戰場)은 2월~3월 사이에 있을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다. 누가 더 많은 우호 지분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김택진 대표가 보유 하고 있는 엔씨소프트 지분은 9.9%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15.08%를 가지고 있다. 넥슨이 최대 주주지만 그간 지분 확보 목적은 ‘단순투자’였지만, 이제는 ‘경영참가’다. 최악의 경우 최대주주인 김정주 대표가 주총에 나서서 김택진 대표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 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관심은 3대 주주인 국민연금으로 쏠린다. 국민연금은 엔씨소프트 지분 7.89%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김택진 대표가 국민연금을 우호 세력으로 확보할 경우 17.8%의 지분을 확보해 넥슨 지분(15.08%)을 넘어설 수 있다. 엔씨소프트 측이 자사주를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당장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은 낮다. 국민연금 외에도 다른 금융사나 외국계 자금을 상대로 한 양측의 우호지분 확보 경쟁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씨소프트의 외국인 소유 비율이 40% 안팎이란 점과 소액주주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은 20~25% 안팎의 우호 지분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통상의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 지분은 35% 안팎이다. 외국인 비율 등을 고려하면 25% 가량의 우호지분을 누가 선점하느냐하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 게임업계 ‘가오나시?’= 넥슨은 자타 공인 게임 업체들을 인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온 회사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넥슨의 인수 합병은 숨가쁘게 진행됐다. 그동안 주워담은 회사들만 줄잡아 10개 안팎이나 된다. 넥슨은 2004년 메이플 스토리 개발사 위젯스튜디오를 인수했고 2005년엔 엔텔리젼트도 집어 삼켰다.
컴뱃암즈를 개발한 두빅엔터테인먼트도 넥슨 손에 떨어졌고, 2008년 7월엔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사 네오플도 넥슨 품에 안겼다. 네오플의 인수 가격에 대해 ‘비용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논란도 빚어졌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땐 넥슨의 네오플 인수는 성공적이란 평가다. 이후에도 넥슨은 2010년 서든어택 개발사인 게임하이를, 2011년 JCE(현 조이시티)를 인수했고 아틀란티카 개발사 엔도어즈도 넥슨이 가져갔다. 특히 상장이 돼 있는 게임사들을 비상장사인 넥슨이 집어삼킨 것도 이슈가 됐다.
넥슨이 업계 영향력을 확대해온 것의 핵심엔 결국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부풀리기란 설명이다. 이 때문에 주변의 모든것을 집어 삼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오나시’라는 별명도 나오게 된 것이다.
넥슨이 업계 2위 엔씨소프트를 집어삼킬 경우 넥슨의 인수합병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위가 2위를 집어삼키면서 수조원대의 시가총액을 가진 초대형 게임사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김정주의 예고된 흑심 본색? = 김택진 대표가 김정주 대표에게 엔씨소프트 주식 14.7%를 넘긴 것은 ‘확실한 경영권 보장’이란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경영 참여’로 투자 목적을 바꾸자 엔씨소프트 측이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됐다면 그 가격(주당 25만원)에 팔지는 않았을 것”이란 반응도 그래서 나온다.
증권업권에선 넥슨의 ‘변심’이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됐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주식 0.4%(116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엔씨소프트 측은 넥슨의 지분 추가 매입에 대해 반발했다. 사전에 상의도 없이 지분을 매집했다는 반발이었다.
업계에선 이미 지난 27일의 투자 목적 변경 공시는 예고돼 있었단 분석이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 인수 목적이었던 EA 또는 밸브사 인수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면서 넥슨이 8000억원이나 주고 산 엔씨소프트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무용해진 탓이다.
그동안 엔씨소프트 이사회에 넥슨 측 인사는 참여치 못하고 있다. 최대주주 입장에선 거액을 들인 투자에 비해 발언권이 없어졌다는 점에 불만이 생길 여지가 큰 것이다. 넥슨 관계자는 “투자 결정후 지난 2년여간 두 회사가 합쳐져 낸 시너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엔씨소프트 측은 그간 넥슨이 보여온 성장 방식과 회사 규모 등에 비춰 언제든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최대주주가 누릴 권리를 저지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넥슨 입장에선 결국 컨텐츠 확보가 가능하단 뜻이기도 하다”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경영참여가 이뤄질지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엔씨 주가... 주총 전까지 오른다?= 전쟁이 본격화 된 이후 첫 거래일인 28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개장 직후 상한가로 치솟았다. 개장 전 시간외 거래에서 이미 매수세는 상한가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날 장 마감 이후에도 20만주가 넘는 주문이 상한가 매수로 들어와 있지만, 해소가 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면서, 매도 거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의 상한가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씨소프트는 오는 2월 11일 실적발표와 함께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한다. 전화회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날 IR에선 회사 CFO 등 회사 지도부가 나서서 경영권 방어와 관련해 어떤 발언을 내놓느냐에 따라 엔씨소프트의 상한가 행진 향배도 갈릴 전망이다. 또한번의 분수령은 3월께 열릴것으로 전망되는 주주총회다.
공정거래위원회 변수도 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승인 여부에 대해 재검토 의지를 비치면서다. 다만 넥슨측의 실질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당국은 일단은 관망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의 지배 구조가 변화되지 않았다. 지분율도 그대로다. 향후 변화가 생기면 기업결합 심사가 다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