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에 가까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직장인들의 애환과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고 믿고 있었던 마음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통해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동질감으로 이어진 덕분이다.
이처럼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인간관계와 업무스트레스, 적성과 조직문화 등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지만 이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특히 강압적인 상사, 나보다 잘 나가는 동기, 나를 무시하는 부하직원 등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받게 되는 상처는 일상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에 빠지게 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해 이승민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전문의는 최근 출간한 ‘상처받을 용기’라는 책을 통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별 의미 없는 비난에 고민하고 상처받으며 소모적인 감정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비난할 때 수용할만한 것은 받아들이지만 쓸데없는 것은 깔끔히 무시해버리는 것, 바로 상처받을 용기와 관련해 이승민 전문의가 입을 열었다.
다음은 이승민 전문의와의 일문일답.
- 다양한 기업에서 주로 어떤 상담을 하고 그중 가장 많은 고민은 무엇인가.
회사 내 임직원들의 다양한 심리 문제를 상담하고 치료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상담내용은 크게는 회사 내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스트레스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아무래도 개인적인 내용보다는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향이 많다. 일도 일이지만 직장 내에서의 다양한 인간관계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많이 호소한다.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상사, 험담을 늘어놓는 동료들, 무시하는 후배들 등 대인관계의 갈등과 관련된 문제가 가장 많은 편이다. 그 외에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한 갈등, 미래에 대한 고민, 성과 부족, 스스로의 능력부족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편이다.
- <상처받을 용기>가 지난 연말 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구나 직장에서의 고민을 안고 살지만 쉽게 드러내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드라마 ‘미생’으로 인해 사람들이 직장 내에서의 갈등과 고민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같이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증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경험상 많은 직장인들의 고민은 일 자체보다는 서로 부대끼는 사람들로 인한 경우가 많으며 이 사람과의 갈등에 대한 내용을 책에서 언급하고 있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 책 내용 중에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아무 이유 없이 비난받고 오해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나를 비난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가 나를 욕하고 다닐 리 없지 않은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닌, 별것 아닌 존재로 여기고 조금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험담에 내가 상처 받는다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물어뜯을 사람은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 나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비난에 흔들린다면 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이겠는가. 기분은 분명 나쁘고 화가 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내 기분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 없는 비난에 휘둘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면에는 명암이 있듯 그러한 사람들 반대편에는 언제나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소모적으로 비난에 신경 쓰기보다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면 불안을 줄이고 행복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나에게 상처 주는 주변 사람들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마음가짐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있다면?
안테나를 내 쪽으로 다시 옮겨놓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내 기분, 내 생각이 어떠한지 스스로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보다는 남의 기분과 생각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특히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예민한 더듬이는 더욱 발달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갈등상황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의 생각을 예상하고 맞추려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나를 보호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비로소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아무래도 비난의 상처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이다. 부부도 구성원 각자가 행복해야 더욱 더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어른들이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어른들은 나를 칭찬해줄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없기에 스스로 자존감 상승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두들 너무 바쁘지만 회사일이나 가정 일에서 10분이라도 벗어나 내 인생과 흥밋거리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 직장 내 동료나 상사, 부하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다른 유형의 관계(친구관계, 이성관계, 가족관계 등)에서 받는 상처와 비교했을 때 더 크고 심각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의 비난의 파급력에 대해 걱정을 하곤 한다. 직장은 아주 큰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에 우연히 파생된 비난의 공기가 쉽게 퍼질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 또한 직장이라는 곳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공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뛰쳐나올 수도 없다. 이성이나 친구는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도 되고 가족과는 연을 끊고 살기도 하지만 가장, 부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상황에서 직장을 무작정 뛰쳐나오기란 쉽지 않다. 성인의 중요한 덕목 중 책임감이라는 부분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해결될 수 없고 무조건 견뎌내야만 하는 문제’ 안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장 문제를 더욱 힘들어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이승민 전문의 또한 직장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나 또한 많은 비방과 배신, 뒷담화 속에서 살고 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에 대한 맷집을 키우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좋아하는 밴드생활도 하고 있다. 맷집은 평소에 키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맷집조차도 쓸모없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일단 ‘나를 보호하자’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내가 남 입장을 고려할 수는 없다. 나를 지켜야 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생각들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받으면서 ‘그럼에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분노와 불안의 감정에서 많이 회복되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이미 읽었거나 앞으로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한마디.
많은 관심과 성원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책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번쯤은 나의 자존감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