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관광의 모범, 일본 동부 3개현④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독도에서 동쪽으로 200㎞쯤 더 간 지점의 동해 지도를 세로로 반 접으면 강원도와 딱 겹치는 부분이 일본 니가타현인데, 이곳에서는 오는 11월10일까지 ‘대지의 예술제’가 광대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다.

예술은 인간이 하는 창의적 활동인데, 자연(대지) 위에서 한다는 점에서, 여느 미술전람회 또는 문화예술축제와는 색다르다는 느낌이 준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대지) 위에서 인간의 예술을 꽃피우는 축제인 것이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

그렇다면, ‘대지 예술제’의 중심구역인 니가타현 도카마치시(市)에서, 자연이 태초에 빚어놓은 예술작품의 면면은 어떨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나카사토마을 지세= 도카마치는 강과 평야가 많은 니가타현 중 남쪽 나가노현 산악지대에 인접한 내륙도시이다. 그래서 산, 강, 평야의 조화가 돋보인다.

아름다운 명승이자 국립공원 기요쓰협곡(清津峽谷)이 있는 도카마치시 남부 나카사토(中里) 마을은 높은 산 아래 또는 들판 사이로 많은 강들이 교차한다.

그래서 니가타현에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지세를 보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성철스님의 자연철학 법어는 나카사토 마을에도 잘 어울린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

강을 사이에 두고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암벽이 V자형의 대협곡을 만드는 기요쓰쿄((清津谷)는 일본 3대 협곡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협곡의 웅장한 절경, 주상절리가 다시 한번 비틀어진 하식애(河蝕崖), 신비스런 문양을 그려놓은 바위의 표면, ‘S’라인의 세찬 급류는 살아움직이는 하나의 회화작품이다.

▶수려한 협곡, 안전관람 터널도 예술품= 파란만장한 지세라는 것은 지질운동이 왕성했던 곳이라는 뜻이고, 이런 곳에는 약초도 좋고, 소채와 곡물의 건강성도 뛰어나며, 탁족하기 좋은 수질은 물론 온천도 좋기 마련이다.

이런 여러 매력 때문에 이곳에 많은 사람이 몰리던 중, 1988년 대형 낙석사고가 발생해 대중들의 관람 스팟이 폐쇄했다가, 1996년 안전한 터널로 만들어 다시 터널 속 전망포인트를 통해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 터널 중 전망포인트 [JNTO 제공, 촬영=나카무라 오사무]

터널 중간 중간 협곡사이로 청정 옥수가 세차게 흐르는 풍경을 볼수 있는 관람대가 있다. 이어, 750m의 터널을 끝까지 가면, 그야말로 V자 협곡사이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물결의 장관을 목도하는 전망 터널이 나온다.

발목까지 차오를 정도의 얕은 물을 담은 곳으로 양말을 벗고 들어가 협곡을 구경하게 된다.

물을 채운 이유는 도카마치 나카사토 마을을 적시며 인간에게 많은 풍요를 안겨준 물을, 방문객들이 손수 적셔보고, 한편으로는 터널 아치를 둥근 액자 삼아 기요쓰협곡의 모습은 물론, 물에 비친 반영(反影)까지 눈과 카메라로 담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나아가 ‘물 위의 리얼리티, 우리의 풍요롭고 예술적인 삶, 즉 문명이라는 것은 물을 매개로 빚어진 것’이라는 철학적 의미도 읽혀진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터널 예술 [함영훈 기자]

▶카타르시스→깨달음→비움과 쇄신= 물에 발을 담근 채 보아야만 하는 이 ‘터널 종점’의 풍경은 실경 동양화이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내가 왜 아등바등 살았나”, “친한 벗에게 굳이 그런 말 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이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그냥 행복하게만 살자.” 이런 류의 반성과 티끌 털어내기 식 다짐도 피어난다.

다시 터널을 돌아나오는 길엔, 터널 아트를 좀더 여유롭게 감상한다. 2018년 대지의 예술제 때, 협곡을 보러가는 통로인 이 터널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개조했다.

자연의 5대 요소인 나무(木), 흙(土), 금속(金), 불(火), 물(水)을 소재로 예술적 콘텐츠를 터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입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에서 새롭게 단장했다는 설명이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에서 발견한 산양

터널 중간쯤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놀랄 수도 있다. 안에서 밖은 훤히 보이고, 밖에서는 안을 보지 못하는 구조인데, 볼 일을 보다가 바깥의 여행자들이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터널 바로 옆 입구의 1층에는 카페가, 2층에는 족욕탕이 새롭게 들어섰다. 왕복 1.5km에 불과한 아트산책이지만, 발의 피로를 풀고가라는 배려이다.

그래서 기요쓰협곡터널 여행을 마치면, 작은 티끌조차 정화시킨 느낌을 받는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에 사람의 창의성이 조금 거들었을 뿐인데.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노벨상 수상작 ‘설국’의 배경지, 도카마치

▶미술아, 더는 음악 안부러워해도 된다= 도카마치시 나카사토(中里)지역은 시나노강을 비롯해 기요쓰강, 가마강, 시치강 등 수량이 풍부하다. 이에따라 벼농사를 중심으로 채소, 화훼 등의 재배가 이뤄진다.

기요쓰 협곡 일대는 조신에(上信越)고원 국립공원,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또한 인근 가마강 강변의 나나쓰가마도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같은 강에 의한 대지의 형세를 표현한 예술 작품이 에치고쓰마리 창고미술관 ‘소코(SOKO)’에 전시돼 있다. 긴 세월이 흐르면서 하안 단구(河岸段丘:terrace)가 생기고 물길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며, 때론 인간이 물의 방향과 양을 조절해 문명의 발달을 재촉했던 과정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나카사토지역에선 매년 3월 설원 카니발 나카사토가 개최돼 설원 일대가 스노우 캔들로 장식된다.

신이 빚은 작품, 즉 자연을 닮은 니가타의 예술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미학’이기에, 미술이 늘 음악을 부러워하던 특성, ‘감흥의 즉각성’이 있고, 감상자는 굳이 감상학개론, 미학개론, 미술사 등의 지식을 갖출 필요가 없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니가타 기요쓰 협곡의 장관[함영훈의 멋·맛·쉼]
일본 국보 화염형 토기

▶화염형 토기 발견된 남부 쓰난(津南)= 중리 즉 나카사토 지역에서 좀더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나가노현에 인급한 지점에 쓰난(津南)이 나오는데, 이곳에선 선사시대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대지의 문명이 선사시대부터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최고 9단의 웅장한 하안단구가 형성돼 있지만 4500년전 화염형 토기(일본 국보)를 만들어 농경 및 수렵생활을 영위할때엔 단구의 계단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나카쓰강 하안단구 위 고지대(강바닥에서 160m)에 위치한 조몬시대 중기 유적 오키로하라 유적(사적)은 직경 120m 마을에 가옥 200여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화염형 토기 외에 타제석기, 석촉, 조몬쿠키 등이 발굴돼 쓰난마치 역사민속자료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구릉과 논이 적절히 섞여있는 쓰난에선 벼농사 외에도 화훼, 인삼, 아스파라거스, 옥수수 수확도 이뤄지고 있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