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치마폭을 나온 남원, 예술과 자연 속으로[함영훈의 멋·맛·쉼]

입력 2024-08-05 15: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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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公 선정 강소형잠재관광지 남원

자연과 예술의 조화 김병종미술관

뱀사골·구룡폭포는 자연이 빚은 예술

광한루에선 이도령·성춘향 추억을…

춘향의 치마폭을 나온 남원, 예술과 자연 속으로[함영훈의 멋·맛·쉼] — 사람의 예술,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지리산을 경배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가까이는 함파우골, 멀리는 뱀사골 등 자연을 섬기는 모양새이다. 자연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 ‘겸손한 미술관’이 됐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 대로다.

본관 앞 어린이 아뜰리에 ‘콩’이 있는 별관엔 좁은 통로 사이, 거울 속 미디어아트가 반긴다. 거울이 서로 반사하니 좁은 통로도 넓어 보이고, 지나는 관람객은 미디어아트와 어울려 작품 주인공이 된다. 본관과 별관 사이의 못에 반영된 미술관은 녹색 구릉과 어우러진 테칼코마니 그림을 빚어낸다.

‘자연과 예술의 조화’ 김병종미술관

미술관 앞 계단식 못엔 함파우골의 자연과 초목이 담겨, 그 자체로도 작품이다.

미술관은 ‘바보 예수’, ‘풍죽’, ‘송화분분’ 등 김병종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이 빚은 작품 450여 점과 기증된 다른 작가의 명작 수 십점을 보여준다. ‘송화분분’의 아이콘, 붉은 꽃은 ‘생명의 상징’이고, ‘풍죽’은 바람을 그리려, 바람결에 댓닢들이 부딪는 소리가 들릴 듯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갤러리 곳곳에 ‘숲멍’할 수 있는 통창이 있고, 통창은 솔숲과 지리산을 담은 실경 회화의 액자가 된다.

2000권의 책을 소장한 북카페와 달항아리 백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국보순회전’도 진행돼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너무 맛있어서 미안’이라는 간판의 커피숍에 앉아 자연이 빚은 예술을 감상하고 물멍해도 좋다.

특히 미술관이 국악을 만나는 장면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김병종미술관은 국립민속국악원,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 등과 ‘미술관에서의 음악공연’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이 미술관은 관람객들의 문화적 힐링은 물론, 무명의 지역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등 두 가지의 목적에 충실하다. 지리산-춘향-광한루-소릿길로 이어지는 남원 낭만주의를 확장시키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 연구개발실이라 할만 하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 ‘뱀사골’

인간의 예술이 모인 미술관은 누구를 향해 경배하는가. 우리는 자연의 예술품, 뱀사골로 향한다. 이곳은 지리산 제2봉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14㎞의 골짜기로 지리산국립공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로 꼽힌다.

전 구간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이 계곡에는 100여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넓은 너럭바위가 곳곳에 있고, 100여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줄을 잇는다.

사진 작가들이 몰리는 괴석 위에 서자 지리산의 옥수가 흰 포말로 바뀌면서 구불구불 용처럼 흘러온다. 이 계곡은 언제 찾아도 수량이 풍부하다. 뱀사골에 들어서면 선선한 기운 덕분에 이마의 땀이 어느새 식어있다. 근처엔 석실, 요룡대, 탁용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과 같은 명승이 있다.

어디든 앉아 탁족하는 것 만으로 더위를 잊는다.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안내소를 통해 안내를 받으면 자연생태 관찰로를 통해 산책과 등산도 즐길 수 있다.

뱀사골 인근 와운마을은 해발 800m나 되는데도 제법 가옥이 많다. 이곳의 명물은 마을 뒷산 천연기념물 ‘천년송’이다. 할배송 보다 할매송이 더 크다.

수령이 500여 년 정도인 이 거대한 나무는 아직 나이가 그만큼 되지 않았지만 천년송이라 부른다. 이곳에선 지리산의 평화와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린다. 낙락장송의 전형 같은 자태도 일품이고, 지리산 5부 능선인 이곳에서 위, 아래로 보는 파노라마 풍경도 멋지다.

370개 계단 아래 자태를 드러낸 구룡폭포

뱀사골서 멀지 않은 산내면 달궁계곡은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덕두봉의 호위 속에 달궁~심원마을 구간 6㎞를 흐른다.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안심소 등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를 지도와 대조하며 일일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달궁은 경주의 월성과 같은 뜻이다. 사국 정립 이전인 기원전 350년, 신흥제국 백제와 이웃나라 변한에 쫓기던 마한의 효왕이 피란도성을 쌓은 곳이어서 삼한을 연구하는 중요 역사유적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다시 평지로 가기 위해 주천면 산도로를 내려가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물소리가 아득하게 들리고, 샛길 입구에 구룡폭포 입구 표지가 나온다.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노닐다가 다시 승천한다’는 용들의 냉탕욕장이란다. 두 마리 용이 첨벙거리며 교류한다는 뜻의 교룡담, 원천천 상류가 폭포 위쪽에 있어 원천폭포라고도 한다. 용(龍)자 들어간 폭포 치고 멋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주인공을 만나려면 가파른 계단 370개를 내려가야 한다.

드디어 구름다리 앞에 높이 30m 폭포가 우렁차게 물줄기를 뿜어낸다. ‘원천’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뭔가 영험한 데가 있어서인지, 기도하러 온 무속인들도 늘 보인다. 뱀사골의 물소리가 현악4중주라면, 구룡폭포의 물은 ‘합창’ 오케스트라에 비할 만 하다.

지리산 운봉 바로 아래 평지 용산리에는 허브와 조각품, 그리스 산토리니 루프탑 디자인이 어우러진 ‘지리산 허브밸리’가 있다. 1300여 종의 허브가 자생해 웰빙 허브산업 특구 지정을 받았다. 허브체험관광농원, 허브 의약품 및 제품 제조단지, 자생식물생태공원 뿐 만 아니라, 사진 찍기 좋은 산토리니 옥상놀이터도 매력적이다.

지리산 인근엔 음식도 약이어서, 근처에서 식당 ‘정향채’를 운영하는 임명복 사장은 항암에 좋은 성분으로만 미식을 만든다.

광한루에선 누구나 이도령·성춘향이 된다

김병종 미술관-춘향테마파크-광한루원는 1㎞ 반경 내에 있다. 미술관 옆 춘향이. 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의 낙원인 삼신산이 잘 어울리도록 설계됐다. 한국 제일의 누원이며,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이다.

광한루원 안에는 광한루, 오작교, 완월정, 영주각, 춘향관, 춘향사당, 월매집, 공예품점, 카페 등이 있다. 물이 통하는 아치 수로 위 오작교에 서면 누구든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한복 차림이면 금상첨화.

소설 속 이몽룡은 남원 일대 암행어사, 담양 군수를 지낸 문신 성이성(1595∼1664)이다. 성이성은 봉화 자기집 근처 마을에 춘향 비슷한 ‘춘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서당고택을 지으면서 유난히 여성용 규방을 넓게 차렸지만, 소년때 헤어진 춘향은 끝내 봉화로 오지 않았다.

문화유산방문캠페인 10개 코스 중 하나, ‘소릿길’ 거점인 남원시는 올해 춘향제를 통해 ‘바가지 없는 축제’, ‘시민과 여행자가 화합하는 축제’의 신기원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