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당시 항공기 운항이 시작된 줄 몰랐다고 주장해 온 조현아(40ㆍ구속기소)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실제로는 항공기 출발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부사장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번 사태의 책임은 내가 아닌 박 사무장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는 취지의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해 성난 여론을 잠재우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달 5일(미국 현지시간) 대한항공 KE086편 일등석에서 조 전 부사장은 견과류 서비스 문제로 항공기를 세우도록 지시한 뒤 “이미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 세울 수 없다”는 박창진 사무장의 말을 듣고도 “상관없으니 비행기를 세우라”고 말했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기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여승무원을 질책하면서 “무릎 꿇고 (서비스 매뉴얼을) 찾으란 말이야. 서비스 매뉴얼도 제대로 모르는데, 안 데리고 갈 거야. 저X 내리라고 해”라고 소리쳤다.

그는 이어 일등석 출입문 앞으로 걸어가 박 사무장을 향해 “이 비행기 당장 세워. 나 이 비행기 안 띄울 거야. 당장 기장한테 비행기 세우라고 연락해“라고 운항 중단을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항공기는 이미 미국 JFK공항 제7번 게이트에서 유도로 방면으로 진행 중인 상태였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이미 들어갔다고 만류하는 박 사무장에게 조 전 부사장은 “상관없어. 니가 나한테 대들어, 어따 대고 말대꾸야”라며 “내가 세우라잖아”라고 3∼4차례 호통을 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조 전 부사장은 당시 항공기가 운항을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조 전 부사장은 매뉴얼을 직접 확인하고 뒤늦게 여승무원이 매뉴얼대로 서빙을 했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화살을 박 사무장에게 돌렸다.

그는 “네가 나한테 처음부터 제대로 대답 못해서 저 여승무원만 혼냈잖아. 다 당신 잘못이야. 그러니 책임은 당신이네. 네가 내려”라고 소리쳤고, 박 사무장을 출입문 쪽으로 밀어붙이기도 했다.

결국 박 사무장이 내리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승객 247명을 태운 항공기는 출발이 약 20분이나 지연됐다. 하지만 기내에서는 단 한마디 사과 방송조차 없었다.

이 사건 언론 보도 이후 국토교통부가 조사에 착수하자 조 전 부사장은 조사가 시작된 첫날부터 직원들에게 ‘거짓진술’을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조사 첫날인 지난달 8일 오후 4시께 여모(57ㆍ구속기소) 상무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언론에서 항공법위반 여부에 대해 거론하고 있으니 최종 결정은 기장이 내린 것’이라고 국토부 조사에 임하도록 주문했다.

또 여 상무에게 ‘승무원 동호회(KASA)’를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박 사무장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는 취지의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여 상무는 조 전 부사장에게 “지시하신 대로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내는 등 수시로 상황 보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당시 조 전 부사장 외에 유일한 일등석 승객이었던 A 씨는 땅콩 회항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대한항공 고객센터를 통해 조 전 부사장으로 인해 겪은 불편사항을 접수했다.

그러자 여 상무는 같은 달 10일 오전 7시 30분께 대한항공 지창훈 사장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 “사장님, 이 승객은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인데 고객서비스실에서 사과 및 위무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장님께서 고객서비스실에 특명을 내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같은날 대한항공 고객서비스팀 상무는 직접 나서 해당 일등석 승객에게 언론 접촉을 삼가줄 것과 불편사항을 사과받고 잘 마무리 지은 것으로 말해달라며 회유했다. 조 전 부사장 역시 이 과정을 전부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총 5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조 전 부사장의 첫 공판은 오는 19일 오후 2시 30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