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봄이 왔네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장기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한 말의 속엔 계절적 의미 뿐만 아니라 최근 개선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반도체 업황을 빗댄 것이 아니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D램의 가격이 전고점을 회복하는 등 레거시 반도체 부문의 이윤이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가운데, 글로벌 시장을 놓고 ‘라이벌’ SK하이닉스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이윤 창출이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가 ‘10만전자(삼성전자 주가 10만원대)’를 넘어 12만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종가 기준으로 전일 대비 0.51% 내린 7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7만900원까지 오르기도 했던 주가가 장 막판 하락 마감한 것이다.
다만, 지난 한 주(4월 29일~5월 3일) 삼성전자 주가는 1.17% 상승하며 최근 3주 연속 이어진 하락세를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 주가 흐름에서 주목할 사항은 미국 주요 반도체 종목들이 최근 5일간 약세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점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미국 증시 대표 반도체 지수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이후 5일간 1.6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지수를 구성하는 주요 종목인 TSMC 미국증권예탁원증서(ADR·-1.02%), 브로드컴(-5.56%), ASML ADR(-4.65%), AMD(-5.23%), 인텔(-3.79%) 등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엔비디아(+2.34%), 마이크론(+0.29%), 퀄컴(+10.66%) 정도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했지만 삼성전자가 상승 흐름을 유지할 수 있던 배경으론 최근 발표한 올해 1분기 호실적이 꼽힌다. 지난달 30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에 따르면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71조9200억원, 6조6100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전년 동기 대비 12.8%, 931.8%씩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반도체(DS) 부문이 1조9000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5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점이 주가 반등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K하이닉스와 HBM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벌이고 있는 경쟁도 주가엔 오히려 삼성전자 주가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단 평가도 있다.
4세대 HBM(HBM3) 경쟁에선 글로벌 1위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사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은 SK하이닉스가 승리를 거뒀단 평가가 나오며 삼성전자의 주가엔 하방 리스크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 12단 5세대 HBM(HBM3E) 경쟁에선 삼성전자가 분전하며 ‘원조 메모리 1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 투심을 자극하며 주가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3E 8단을 지난달 양산하기 시작한 데 이어 2분기 내 HBM3E 12단 제품 역시 양산하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6세대인 HBM4의 경우 내년까지 개발을 마치겠단 목표이며, 같은 해 양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엔 2016년부터 올해까지 HBM 총 매출액이 100억달러 이상일 것이라면서 ‘원조 HBM 제조사’란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2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SK하이닉스의 HBM 누적 매출액을 두고 “100억달러대 중반, 백수십억 달러일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진 않았지만 SK하이닉스가 앞서고 있음을 내포한 발언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HBM 물량이 올해 뿐 아니라 내년까지 대부분 완판됐다고 밝혔다. HBM4 역시 기존에 예고했던 2026년 대신 양산 시점을 내년으로 1년 앞당겼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더 기술력 높은 차세대 HBM 제품을 더 빠른 시점에 낮은 가격으로 생산, 판매하겠단 목표를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구조”라며 “D램 시장에서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HBM 부문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이것이 양사 이윤의 증가한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D램 시장 매출 규모 중 HBM 비중이 20.1%로 전년(8.4%) 대비 11.7%포인트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흐름에 맞춰 증권가에서도 삼성전자 주가에 대한 눈높이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12만원으로 올려잡았다. 3분기부터 엔비디아, AMD로 HBM3E 공급이 본격화될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삼성전자는 전 세계 AI 주식 중에 가장 높은 밸류에이션 매력을 보유한 동시에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인 업체”라며 “하반기 다시 찾아온 삼성전자의 시간에 주목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국내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목표주가 컨센서스는 10만3800원이다. 지난 2일 목표주가를 제시한 증권사 22곳 중 3곳을 제외한 19곳이 ‘10만전자’를 예측했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선단공정 제품 비중 증가와 5세대 HBM 진입 가시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디스카운트 요인들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HBM 관련 이벤트가 삼성전자 주가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HBM 관련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에 따른 투심 악화 등 매크로(거시경제) 악재가 삼성전자 주가 상승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전자 목표가를 9만5000원으로 기존 대비 소폭 하향 조정한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예상을 상회하는 1분기 실적을 기록한데다 2분기에도 반도체 부문의 실적 개선이 다른 부문의 둔화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면서도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현재까지의 높은 시장 이익률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