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엔 도움 안 돼…소비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신호’로 판단
올해 민간소비 예상보다 부진…“국외소비지출이 이끌것”
여행 관련 제조업 수혜…여행 물가 오름세는 변수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지난해 하반기 해외 여행이 급증하면서 여행수지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그 덕에 민간소비가 가까스로 플러스(+)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코로나19 시기 큰 위기를 겪었던 항공사 등 여행 서비스 산업과 여행용품 관련 제조업도 숨통을 겨우 트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코로나19 기간 활발한 상품 소비로 내수를 받치던 ‘보복 소비’가 봉쇄가 풀린 뒤 해외로의 ‘보복 여행’으로 옮겨가면서, 성장에 대한 소비 기여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다만 해외에서의 씀씀이가 커진 것이 우리 경제의 ‘소비 여력’이 회복됐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소비 덕 민간소비 찔끔 성장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는 0.2% 증가했다. 재화소비가 줄었지만, 거주자 국외소비지출 등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와 관련해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거주자가 국내에서 소비했든, 해외에서 소비했든 소비를 많이 하면 민간소비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게 돼 있다”면서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해외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은에 따르면 민간소비에서 국외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코로나19 시기 1%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2%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4% 내외 수준을 나타낸 것을 감안하면 해외 소비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국외소비 자체는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려면 국내 소비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국외소비는 민간소비 통계에 포함돼 국내 소비자의 소비 여력과 심리를 판단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강제로 억제된 소비가 분출되면서 나타난 보복소비가 서비스소비로 지연됐다”면서 “국외 소비가 민간소비 둔화 폭에 기여하는 것이 맞다. 그동안 민간소비는 국내 서비스 소비가 주도해왔지만, 순차적으로 국외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해외 소비) 회복 속도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아직 그런 여지가 남아있다고 하면 민간소비를 끌어갈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내수부진을 감안해 올해 연간 민간소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1.9%로 조정한 바 있다.
항공사·여행사 실적 반등…여행용품 소비 ‘쑥’
한은은 해외 소비 지출로 국내 관련 회사들도 수혜를 입고 있는 만큼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봤다. 해외여행 수요가 이어지면서 국내 주요 항공사와 여행사 뿐 아니라 보험사, 여행용품 제조사 실적도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이들 업계는 중·소형사들이 문을 닫고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웠지만,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14일 기준 인천공항 일일 여객이 10만2554명으로 나타나 지난 2020년 1월 27일(20만948명) 이후 만 4년 만에 2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항공사별로 보면 저비용항공사인(LCC) 진에어가 지난해 영업이익 1816억원을 기록하며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또한 팬데믹 이후 처음 연간 흑자가 예상된다.
여행사별로 살펴봐도 하나투어의 지난해 연간 송출객 수는 259만명으로 전년 대비 385.2% 늘었다. 모두투어 또한 전년 대비 327% 가량 불어난 131만4000명의 고객을 송출했다. 노랑풍선은 같은 기간 송출객이 430% 증가했다.
유통업계에서도 올해 초 설 명절을 대비한 주방용품보다도 캐리어 등 여행가방 소비가 늘어난 점을 주목했다. 한 홈쇼핑 업체에선 여행 가방 매출이 전년 대비 40%나 늘었다.
또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나면 여건상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국내 여행을 택하는 간접적인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여행소비 활성화 대책이나 지원 정책을 많이 내놓게 되면 가계는 어느 정도 효용을 갖고 소비할지 판단하기 때문에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에도 여행수요가 국내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