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민자역사, 18년째 ‘유령 건물’… 1~4층 공실 장기화
신촌·이대 상권 침체, 사업자-세입자 소송전 등으로 방치돼
2020년 SM그룹이 운영권 확보 “올 상반기 활용 방안 발표”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상권은 죽었지, 교통여건도 최악이지. 10년 넘게 공실 상태예요. 예전에 상가 분양받은 사람들은 쫄딱 망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아무도 안 가는 곳이죠.” (서울 서대문구 A공인중개사 관계자)
지난 3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 민자역사. 건물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비워진 채 ‘유령 건물’로 전락한 이곳은 18년째 방치된 모습이었다. 지하 매장으로 향하는 계단엔 출입 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었고, 1층엔 ‘새 단장을 위해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인적이 끊긴 건물은 ‘흉물’이나 다름없었다.
신촌 민자역사는 지하 2층~지상 6층 연면적 3만㎡ 규모 복합쇼핑몰이다. 2004년 ‘동대문 밀레오레’로 유명한 성창F&D가 신촌 민자역사 임대사업자로 선정되면서 개발이 본격화됐다. 성창F&D는 국가에 점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30년 운영권을 확보했고, 1200억원을 들여 2006년 상업시설을 완공했다.
신촌 민자역사는 사업 초기만 해도 신촌·이대 상권의 중심지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1~4층엔 종합쇼핑몰 ‘밀레오레’, 5~6층엔 영화관 메가박스가 들어섰다. 하지만 개장 후 입점 업체를 찾지 못하면서 2009년 공실률은 70%를 기록했다. 2012년 이후에는 아예 저층이 폐쇄된 채 방치됐다. 현재 메가박스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반쪽 영업’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실패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성창F&D가 각종 소송전에 휘말린 것이 시작이었다. 성창F&D는 신촌 밀레오레 1400여개 매장을 한 구역당 6500만원에서 1억원에 분양했다. 점포 분양 당시 “신촌기차역이 인천국제공항노선에 포함될 것이며, 경의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5~10분 간격으로 열차가 운행된다”고 홍보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세입자 300여명은 “허위·과장광고에 속아 상가를 분양받았다”며 성창F&D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만 총 550억원에 이르렀다. 2007년 시작된 소송은 수년이 지나 법원이 세입자들이 손을 들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성창F&D는 신촌역사와 보증금과 임대료 체납 문제로 10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양측이 계약을 해지한 후엔 성창F&D가 파산 절차를 밟았다.
상권의 쇠락도 신촌 민자역사의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신촌·이대 상권은 1990년대 유동 인구가 풍부한 ‘노른자 상권’으로 꼽혔다. 패션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스타벅스, 미스터피자 등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앞다퉈 1호 매장을 내는 핵심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서울 서북부 상권의 주도권이 신촌·이대에서 홍대·합정·망원 인근으로 넘어갔다.
서울 서대문구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신촌 민자역사 복합쇼핑몰은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은 데다 이대 상권까지 침체되면서 망한 경우”라면서 “홍대 상권은 지하철 2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3개 노선이 지나가 교통여건이 뒷받침되지만 신촌 민자역사는 열차가 1시간에 3번꼴로 서니 파리만 날린다”고 지적했다.
신촌 민자역사는 2020년 다시 한번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 SM그룹이 신촌역사 지분 100%를 200억원에 인수하면서 2036년까지 1~4층 상가 운영권을 확보했다. 식음료 매장과 쇼핑몰을 입점시켜 상가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좌초됐다. 이어 2021년 신촌 민자역사를 리모델링해 임대주택과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역세권 청년주택’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이 또한 무산됐다.
신촌 민자역사는 당분간 공실 상태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신촌 민자역사를 청년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건물 구조가 적절하지 않아 중단했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도 “신촌 민자역사 관련해 여러 구상만 내놓았을 뿐, 현재 어떤 부서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상가 운영권을 갖고 있는 SM그룹은 올 상반기 중 신촌 민자역사 활용 방안을 확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SM그룹 관계자는 “애초에 신촌 민자역사 상가를 쇼핑몰로 재단장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무산됐다”며 “신촌 민자역사 운영권 계약이 10년 넘게 남은만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활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