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동일한 건물 5채 몽땅 경매행
세입자들 날벼락…형사고소 진행 중
“세입자 약 80명·보증금 80억대 추산”
[헤럴드경제=고은결·신혜원 기자] 젊은층이 몰린 신축 다가구주택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연초부터 터지고 있다. 최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는 임대인이 동일한 5개 다가구 주택이 일제히 경매에 넘겨져, 세입자 수십여명이 온전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 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전후 부동산 상승기에 은행권 대출을 받은 집주인이 고금리 기조 속 이자 등을 제때 갚지 못해 법원 경매로 넘어간 사례다.
3일 법원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12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일대 건물 5채에 대해 임의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 2019~2021년 각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은행의 경매 신청에 따른 것이다. 임의경매는 금융회사가 석달 이상 원리금 상환을 연체하면 바로 실행이 가능하다. 법적 절차 없이 바로 주택을 경매에 넘길 수 있다.
해당 건물 5채를 단독·공동 보유 중인 임대인 A씨는 최근 몇달간 대출금 이자를 연체했다. A씨는 5채 중 4채는 단독 보유, 1채는 다른 사람과 지분을 2분의 1씩 공동 소유했다. 등기부등본상 건물 5채의 근저당권 채권최고액(근저당권자가 임대인에게 받아낼 최대 금액)은 총 49억7280만원이다.
지난해 말 날벼락 같은 경매 예고장을 받은 세입자들은 관악경찰서에 임대인 A씨에 대한 형사 고소장을 접수 중이다. 지난달 초 1개 빌라 세입자 9명이 형사 고소장을 냈고, 5개 건물 세입자가 다함께 형사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임차인들이 자체 파악한 5개 빌라의 세입자는 약 80명, 경매에 넘어간 가구 보증금 규모는 총 80억원대로 추산된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은 고소인이 다수일 경우 보다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고, 임대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는 다소 연관성이 낮다.
다만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민사소송에 나서는 것도 비용 부담으로 망설이는 세입자가 많다고 한다. 세입자 B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은 후 민사소송에 나서면 변호사 수임료는 일정 부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인지대·송달료 지원은 없고, 피해자 선정을 기다리며 생업을 병행해 피해 대응에 시간·비용을 쏟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임차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 근저당이 설정돼 있으면 낙찰되더라도 우선변제권을 가진 은행이 낙찰 대금을 먼저 가져가고, 세입자는 후순위로 밀린다. 남은 대금을 배당받게 돼 피해복구가 쉽지 않은 셈이다. 세입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우선변제권 제도가 있지만, 적용 기준은 임차계약 체결일이 아닌 등기부등본상 선순위 담보 물건의 접수일을 따르게 돼 있다. 즉, 근저당 설정 시점의 보증금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2021년 이후 계약한 대부분 세입자의 보증금이 근저당 설정 시점의 보증금 기준 1억1000만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이런 기준에 맞지 않아 최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없으면 전세사기특별법 피해 신청을 해야 한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최우선변제금 수준의 금액을 소득 및 자산 요건에 구애 받지 않고 10년간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일단 다수 세입자들은 관악구청 전세피해지원센터에도 피해 신고를 접수한 상태다.
한편 A씨의 건물 세입자 대부분은 대학생·사회초년생이다. 부동산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점을 악용해 공인중개사가 건물 근저당에 대해 실제와 다르게 설명했다는 게 임차인들의 주장이다. 또다른 세입자 C씨는 “다른 세입자들과 상황을 공유한 결과, 계약 당시 건물 및 토지 가격을 시세보다 높게 알려줘 근저당 비율을 속이거나 선순위 보증금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