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위 소위에서 최근 여야 처리 불발
친원전 vs 탈원전 코드 놓고 티격태격
결국 양당 지도부 정치적 결단에 일임
홍익표 원내대표 “방폐장은 필요하다”
양당간 별도협상 통한 처리에 기대감
원전의 숙원 21대국회서 풀릴지 주목
21대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를 통해 처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하 고준위 특별법)’이 불발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3년째 표류중이던 고준위 특별법은 ‘발등의 불’인 그 당위성에 힘입어 이번 국회에서는 전격 합의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원전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데다 예전과 달리 방폐장 건설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퍼졌다는 게 그런 시각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최근 열린 산중위 소위에서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더이상 합의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결국 특별법 처리를 여야 지도부에 일임한다는 결정을 내린채 헤어졌다. 여야 합의가 불발된 것은 발의자인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과 민주당 김성환 의원의 법안 내용을 놓고 여야간 시각 차가 컸던 게 요인으로 보인다. 김 의원(저장고의 설비용량을 원전 수명을 기준으로)과 이 의원(원전의 계속운전을 기준으로) 안의 견해 차는 친(親)원전이냐, 탈(脫)원전이냐는 여야의 선명한 대립각에서 기인했다는 평가다. 야당에선 특히 여당의 안이 방폐장 건설과 원전 확대, 두가지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소위의 합의 불발로 특별법 처리에 관한한 국회 문턱을 넘는게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고, 양당 지도부의 정치적 타협에 맡기는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비판을 면치못하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일이 생겼다. 양당 지도부 중 한사람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도 법안을 냈는데, 굉장히 늦었고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산중위 법안소위 문을 넘지못하고 좌초위기에 놓인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양당 수뇌부 간 정치적 협상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그 역시 여당의 친원전 드라이브엔 경계를 보였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이 고준위 방폐장 문제와 이후에 원자력발전 확대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됐다”며 “별개로 문제를 풀어야 하고 별도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어쨌든 야당 원내대표의 ‘타협점은 있다’는 말에 21대국회 임기 내 특별법의 전격 처리가 이뤄질지 시선이 쏠린다.
방폐장 첫발도 떼지 못한 곳은 한국뿐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의 운반·저장 등 관리부터 방폐장까지의 처리까지의 전 과정을 사회적 합의로 달성하기 위한 법안이다. 고준위 특별법의 처리와 특별법 제정은 방폐장 건설의 근거가 된다.
원전 가동후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은 당연히 함부로 버릴 수 없고, 안정성을 위해 특수한 시설에 보관된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로 옆 습식저장시설(수조)에 5년간, 이후 원전 부지내 건식저장시설에 반영구적으로 보관되는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1978년 원전(고리) 가동 이후 쌓인 사용후 핵연료가 1만8600만톤 달할만큼 보관용량이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당장 한빛원자력은 2030년이면 보관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한울원자력(2031년), 고리원자력(2032년)도 향후 10년안에 포화상태가 된다. 결국 원전내 폐기물을 내보낼 방폐장이 없으면 방사성 폐기물을 더이상 보관할 수 없는 시점이 오고,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원전 가동을 멈출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통한 방폐장 건설인 것이다.
개념이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아파트 예를 들어보자. 일반 가정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일단 집 쓰레기통에 보관한다. 좀 모이면 그걸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린다. 집집마다 내다놓은 쓰레기는 트럭에 모아져 매립지로 이동해 처분된다. 사용후 핵연료에 비유하면, 집 쓰레기통은 습식저장시설에 해당하면, 아파트 쓰레기장은 건식저장시설, 그리고 매립지는 방폐장으로 볼 수 있다. 쓰레기 처리는 집~아파트 쓰레장~매립지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집 쓰레기통이 꽉차고, 아파트 쓰레기장도 포화상태인데 매립지로 보내지지 않으면 어찌될까. 집은 물론 아파트 단지의 퀘퀘한 냄새로 골치를 앓게 될 것이 뻔하다. 예를 들 것일뿐, 사용후 핵연료 후처리는 일반 쓰레기와 비견할 수 없이 엄청나게 중차대한 문제로, 미래세대의 안전과 환경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방법론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특별법 처리의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방폐장 건설까지는 무려 37년간(마지노선) 걸린다는 점이다. 법이 통과돼도 부지선정에만 13년 걸리며, 최종 방폐장 건설까지는 30여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특별법을 지금 처리해도 늦었기에 더이상 방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박태현 산업자원통상부 원전환경과장은 “고준위 특별법 처리를 놓고 더이상 지연할 틈이 없다고 본다”며 “친원전이든 탈원전이든 상관없이 원전 운영국이면 방폐장을 만들어야 하며, 그게 우리 세대의 의무”라고 했다. 실제로 세계 운전 운영 상위 10개국 중 영구 방폐장 건설에 착수조차 못한 나라는 한국과 인도 밖에 없다. 다만 인도는 습식재처리 가능국이라 시급성은 떨어진다. 그러니 방폐장을 향해 첫 발조차 떼지 못한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 뿐인 셈이다. 10개국 외에 핀란드는 2025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운영에 착수할 예정이며, 스웨덴은 2022년 건설허가를 취득하고 방폐장 건설에 착수했다.
프랑스(56)-인허가 중
중국(55)-부지 확보
러시아(37)-부지 확보
한국(25)-부지 선정 전
인도(19)-처분시설 무(無), 습식재처리 관리
캐나다(19)-부지 선정 중
우크라이나(15)-부지 선정 중
일본(10)-부지 선정 중
영국(9)-부지 선정 중
물론 방폐장 건설까지 과정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방폐장 건설 추진은 지난 1983년부터 시작됐고, 지금까지 9차례의 입법에 실패했다. 무려 40년간 논의됐으나 진척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방폐장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고, ‘내집 마당엔 안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와 ‘내 임기 전엔 안된다’는 님트(not in my term)와 함께 환경단체까지 맞물려 대립과 충돌의 이슈가 돼 왔다. 지난 2003년 전북 부안 방폐장 부지 선정을 둘러싼 대규모 시위는 험난한 길을 걸어온 고준위 방폐장의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부안군수가 방폐장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으니 지자체가 건설을 자임한 셈인데,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큰 홍역을 치른 것이다. 앞서 정부는 울진, 안면도, 양산 등의 방폐장 부지를 타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방폐장에 대한 색안경 걷히기 시작
하지만 최근 산업부를 중심으로 한 부처가 특별법 필요성에 대한 지자체 설명과 설득에 주력하면서 방폐장 건설에 관한한 더이상 실기(失期)할 수 없다는 지자체나 주민들의 공감대가 확산됐다고 한다. 방폐장에 대한 색안경이 많이 걷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산업부는 담당 국·과장이 원전소재 기초·광역 지자체(울진, 울주, 기장, 영광, 경주, 경북, 울산) 등을 개별방문해 특별법의 필요성과 내용을 설명하는데 주력했다. 지역단체 등이 설명을 요청할 경우 즉시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특별법 취지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등 전국 범위의 활동을 지속해왔다. 산업부 및 산하기관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지자체장, 지방의회 의원, 주민들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진행한 횟수는 모두 188회에 달한다.
이에 특별법에 대해 경계했던 지자체와 주민들도 제정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고, 오히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부산시의회가 지난 24일 국회에 발이 묶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영구저장시설 마련 근거를 담은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앞서 원전소재 광역시도 행정협의회 공동건의문 발표(5월24일)를 시작으로 원전소재 시·군의회 공동발전협의회 결의안 채택(5월25일), 원전소재 기초지자체 행정협의회 건의문 발표(6월12일) 등의 순으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원전소재 기초 지자체들은 대국민 심층토론회를 직접 개최(8월16일), 이슈몰이와 사회적 공감대 확산에 앞장섰다. 산업부는 지난 80년대부터 9차례의 방폐장 부지선정 실패 사례를 고려, 합리적이고 수용가능한 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방폐장 부지 선정은 어디까지나 지자체의 자발적인 공모로 이뤄질 것”이라며 “유치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안 등이 알려지면서 공모에 응할 지자체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준위 특별법은 어쨌든 원전 혜택을 받은 기성세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법이라는 점이다. 기성세대는 좋든 싫든 원전의 수혜를 입었고, 그 후처리는 당연히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특별법을 우리가 계속 외면하는 것은 기존세대가 원전의 열매를 실컷 취한뒤 싼 똥을 미래세대가 알아서 치우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이보다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무능한 소위가 손을 놓았다면 양당 지도부라도 대승적인 합의를 해서 특별법을 처리해달라는 목소리가 크다. 소위로 돌려보내 다시 처리케 하든지, 상임위나 법사위 직행 수순을 통해서라도 합의처리 하는 등 최후의 방법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홍익표 원내대표가 이를 “정치적으로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고준위 특별법, 매우 급하다. 지난 40년간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눈물을 정치권은 이제라도 닦아줄 시점이다.
김영상 논설실장
ys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