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상반기 H지수 ELS 만기 8조원대
원금 손실 규모만 3조원 넘을 것으로 전망돼
제2의 펀드사태로 번질 우려에
금융감독원, 판매사 전수조사 착수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홍콩H지수가 급락함에 따라 은행권에서 판매된 관련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원금 손실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5대 은행서 판매해 내년 상반기 중 만기가 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만 8조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손실 규모도 3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자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에 나섰다.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는 2021년 초 1만~1만2000포인트에 이르다가 현재 40~50%에 불과한 6000포인트까지 추락한 상태다.
‘원금손실’ 불가피…손실 규모 최소 3조원대 전망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F(펀드)·ELT(신탁) 상품 규모는 8조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농협은행 1조4833억원 ▷신한은행 1조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등이었다.
국민은행의 경우 ‘녹인(knock-in)형’ 상품을 많이 팔았는데, 상반기 만기 도래분 대부분에서 녹인이 발생한 상황이다. 녹인형 상품은 통상 ‘녹인 기준선(50%)’ 아래로 떨어져 녹인이 발생한 경우,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 가격이 ‘최종 기준선(70%)’을 넘어야 약정된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해당 상품들에서 당장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녹인 기준선(통상 50%) 아래로 밀린 적이 있고, 만기 시점에서 최종 상환 기준선(통상 70%) 수준까지 회복돼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현재 ‘반토막’ 상태인 홍콩H지수가 반등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을 피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여타 노(NO)녹인 상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당 상품들은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이 최종 상환 기준선 이상이면 약정된 원금과 이자를 주는데, 통상 65% 정도로 최종 상환 기준선이 설정된다. 현재 홍콩H지수 기준으로는 노녹인 상품 역시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상황이 내년 상반기까지도 지속된다면, 5대 은행서 판매한 홍콩H지수 관련 ELS의 원금 손실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내년 하반기 홍콩H지수 연계 ELF·ELT의 만기 도래 규모도 3조9219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가 제2의 펀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도 현장조사 나서…‘불완전판매’ 논란 불지피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에서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부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를 판매해 온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판매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에 대해서는 다음달 1일까지 금융감독원 은행검사1국의 현장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하나·신한·우리·NH농협 등 주요 판매 은행들에 대해서도 서면 조사 방침을 정한 상태다. 증권사 중에서도 최대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 5~6곳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본점 차원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통해 판매에 이르게 됐는지, (판매 실적 등을) 내부 핵심성과지표(KPI)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판매 직원들에게 어떤 교육 자료를 배포했는지 등을 미리 확인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특히 ELS의 경우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고위험 상품이다. 이에 과거 펀드사태와 같은 ‘불완전판매’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은행권에서는 여러 펀드 사태를 거치며 투자자 보호 법규가 까다로워졌고, 이로 인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적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국민은행의 경우 관련 법규에 따라 현재 ELS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결국 불완전판매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완전 판매, 불완전 판매를 증명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완전 판매를 하려면 한 상품을 파는 데 40~50분이 걸리고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며 “현실적으로 완전과 불완전 판매의 경계에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