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미소야, 거기 가지 말고 밖에서 놀아.”
지난 5일 찾은 강원 화천군의 한 사육곰 보호시설. 사육사가 땅콩을 던져주며 유인했지만 반달가슴곰 ‘미소’는 철창 앞을 계속 서성였다.
미소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우리 안이 아니라 밖. 해먹을 달아주려 잠시 내보냈을 뿐인데도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는 미소를 비롯한 반달가슴곰 13마리가 살고 있다. 15마리로 시작했던 이 보호시설이 생긴 지도 약 2년. 그사이 3마리가 죽고 2마리가 새로 왔다.
원래는 곰농장이던 곳의 부지를 빌려 동물구조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동물권행동카라 등이 지난 2021년 6월 보호시설로 바꿨다.
농장이던 곳을 그대로 쓰는 터라 곰들은 농장 시절에 쓰던 우리에 그대로 살고 있다. 그래도 1마리 1실로, 각 곰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은 조금 더 넓어졌다.
가장 큰 변화는 100평 규모의 방사장이 생겼다는 점이다. 시멘트 대신 흙과 풀을 밟고, 폐타이어나 해먹 대신 나무에 올라탈 수 있도록 조성한 자연친화적 공간이다.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 곰 특성에 맞춰 하루에 2~3시간씩 번갈아가면서 방사장을 이용하도록 한다.
“곰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동물구조단체들의 구호와 달리 곰들을 우리 밖 자연 속으로 내보내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농장에서 나고 자란 곰들에게 자연은 두렵고 낯선 공간이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곰들의 몸에는 자연이 좋은데 마음은 자기 공간이라고 여기는 우리에서 안정을 느낀다”며 “일부러 땅콩을 숨기거나 나무에 꿀을 바르는 식으로 신체활동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동물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곰들은 가까스로 쓸개를 빼앗기는 신세는 면했으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인간의 손을 타 야생성을 잃은 동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최태규 대표는 “자연에서 살아가려면 사람을 싫어하고 멀리 하는 게 좋은데 사육곰들은 대체로 사람을 잘 따른다”며 “보호시설에서 여생을 살아가려면 사람이랑 친한 것도 나쁘진 않다”며 씁쓸해했다.
해외에서는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 보호하는 ‘생츄어리(Sanctuary·야생동물 보호구역)’들이 일반화돼 있다. 특히 비슷하게 곰을 먹는 문화가 있던 베트남에는 곰을 위한 생츄어리가 서너 군데 있다. 국내 동물구조단체들이 생츄어리 운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베트남에 견학을 갈 정도다.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생츄어리가 바로 이곳 화천의 보호시설이다. 그러나 생츄어리라고 부르기에는 13마리의 곰이 지내기도 넉넉지 않을 정도로 아직 열악하다. 10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3만평 규모 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에 미치지 못한 이곳을 두고 동물구조단체들은 “임시 보호시설”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지만 보호해야 할 곰에 비해 시설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환경부가 전남 구례에 짓고 있는 사육곰 49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보호시설이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충남 서천에도 70마리가 지낼 수 있는 보호시설이 오는 2025년까지 지어질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사육곰뿐 아니라 야생동물 전시시설 등에서 나온 동물들도 함께 지내야 한다.
올해 곰농장에 남아 있는 곰은 290여마리로 추정된다. 2021년 390여마리, 지난해 330여마리에서 해마다 30~60마리씩 줄어들고 있다. 이마저 자연사로 인한 사망인지, 웅담 채취를 위한 도살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 곰 사육 및 웅담 채취가 현행법상 아직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동물구조단체들은 곰 사육을 금지하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31일 대표 발의한, 야생생물법 개정안은 현재 환경노동위원회를 넘기고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를 앞둔 상황이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2026년부터 곰 사육을 종식하기로 환경부와 곰 사육농가협회, 지방자치들이 협약했으나 약속에 불과하다”며 “실효성을 위해 개인이 곰을 사육 및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