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올 한 해 국내 증시 상승세를 맨 앞에서 이끌었던 2차전지주(株)가 최근 들어 확연히 방전된 모양새다. 추가 상승 동력을 받기는커녕 주가가 크게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2차전지 관련 시가총액 상위 15개 종목의 시총이 최근 1개월간 62조원이 넘게 감소하면서다.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주요 2차전지주에 대한 매도세가 강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2차전지주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활발한 매수세까지 이어지며 2차전지 하락에 베팅하는 투심이 힘을 받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까지 2차전지주가 한동안 조정 국면에 놓일 것이란 의견을 내놓으면서 ‘바닥’을 찍고 반등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일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2차전지 상위 15개 종목, 코스피·코스닥 시총 감소액 81%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종가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2차전지 시총 상위 15개 종목의 시총 총합은 358조454억원으로 한달 전(8월 25일) 420조5388억원과 비교했을 때 62조4934억원(-14.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에만 시총 4위 종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한 규모의 증시 자금이 증발한 셈이다. 현재 국내 증시 시총 3위는 SK하이닉스(83조7203억원), 4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48조3983억원)다.
2차전지 시총 상위 15개 종목의 시총 감소액은 같은 기간 코스피·코스닥 전체 시총 감소액(77조1524억원)의 81%에 이른다. 사실상 2차전지주의 부진이 코스피·코스닥 지수를 전반적으로 끌어내렸다는 뜻이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코스닥 지수 변동률은 각각 -2.94%, -8.20%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2차전지주 약세 속에서도 배터리셀, 소재주 간의 차별화도 발생했다.
시총 감소세가 가장 두드러졌던 종목은 일명 ‘에코프로 형제’로 불리는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이다. 두 종목의 시총 변동률은 각각 -29.36%, -25.69%에 이른다. 전체 시총의 4분의 1 이상이 한 달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엘앤에프도 22.52%나 시총이 급감하며 감소율 20%대 종목 리스트에 올랐다. 이들 3개 종목의 공통점은 코스닥 상장 2차전지 양극재 기업이라는 것이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코스피 상장사 포스코퓨처엠 역시 최근 1개월간 시총이 20.43%나 줄었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양극재 기업을 중심으로 3-4분기 저조한 실적, 수주 공백기로 인해 10월까지 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배터리셀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주가 등락률은 각각 -12.91%, 12.27%, 13.53%로 양극재 주가 흐름에 비해 안정적인 모양새였다.
개인, 2차전지 인버스 ETF…外人, 개별 종목 매도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당분간 2차전지주가 하락할 것이라는 데 방점이 맞춰진 듯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지난달 12일 상장한 2차전지주 하락에 베팅하는 ETF ‘KBSTAR 2차전지TOP10인버스(합성)’에 개인 투자자의 자금이 몰린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인 투자자의 초강력 매수세는 올 들어 나타난 2차전지주 급등세의 주요 원동력으로 꼽힌다.
개인 투자자는 상장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11거래일 동안 ‘KBSTAR 2차전지TOP10인버스(합성)’ ETF에 대해 368억원어치 순매수세를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요 2차전지주에 대해 최근 한 달간 매도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에 대해 무려 7890억원 규모의 순매도세를 보인 가운데, 에코프로비엠(3263억원), LG화학(3054억원), LG에너지솔루션(2580억원), 포스코퓨처엠(2187억원), 삼성SDI(834억원) 등의 보유 주식도 빠르게 팔아치웠다.
박윤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 감소 우려가 발생했고, 미국 예산안 합의에 따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모멘텀 저하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며 “2차전지 인버스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확인되고 있어 상반기와 같이 수급 쏠림에 따른 주가 급등이 재현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리튬가 하락·中 전기차 판매 부진…실적 전망 악화도 주가 반등 걸림돌
증권가에선 주가 하락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아졌지만, 주가가 당분간 회복세에 접어들긴 어렵단 평가가 우세하다.
양극재 판매 가격에 선행하는 리튬 가격이 하락하고 테슬라의 중국 실적이 부진한 등 대외 악재가 이어지는 것은 향후 2차전지 소재주가 단기 반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양극재 판가는 리튬 가격에 후행해서 정해지는데 국내 업체들의 수출 단가는 올해 7~8월 t당 4만2000달러로 전년 대비 14~15% 하락했다”면서 “리튬 가격은 중국발(發) 과잉 재고와 유럽·중국 전기차 시장 성장 감속으로 당분간 의미 있는 반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3·4분기 톤(t)당 7만달러 수준이던 수산화리튬 가격은 올해 3·4분기 3만2000달러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주들에 대한 실적 전망을 낮춰잡고 있는 것도 주가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연구원은 에코프로비엠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1% 감소한 842억원에 머물 것으로 추정하며 5월부터 제시한 ‘매도’ 의견을 유지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3분기 영업이익으로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718억원을 제시하며 기존 대비 15% 하향한 28만원으로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엘앤에프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에 대해서도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전년 동기 대비 89% 감소한 112억원을 제시하며 목표주가를 50만원에서 40만원으로 20%나 내려잡았다.
이 밖에 유안타증권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3분기 실적도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 예상한 점도 2차전지 섹터 전반에 대한 투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