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7나노 생산에 깜짝놀란 미국
가드레일 규제 강화 의사 내비쳐
중국 생산 제한에 삼성·SK만 당황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보조금 받은 기업이 중국에서 확장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최종 규정이 임박해 국내 기업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화웨이가 출시한 스마트폰에서 중국 내에서 생산한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첨단 칩이 발견돼 미국의 경계가 한층 올라간 가운데, 중국 제한 조치가 더욱 강화될 수 있어 미·중 패권 경쟁의 불똥이 거세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일(현지시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의 반도체법 1년 평가 청문회에서 ‘반도체법 혜택이 중국에 가지 않도록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사업 확장을 제한한 가드레일의 최종 규정이 언제 나오느냐’는 질문에 “곧 수주 내로 완성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지원금의 단 1센트도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는 데 도움 되지 않도록 바짝 경계해야 한다”며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지난 3월 상무부는 반도체법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거나 중국 우려 기업과 공동 연구, 특허사용 계약을 하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하는 가드레일 규정안을 공개한 상태다.
문제는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실제 미국 지원금을 받으면 이 가드레일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지원금 관련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내 패키징 공장 부지가 확보되면 반도체 공장 관련 보조금을 미국 정부에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모두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 확장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미 중국 사업 불확실성으로 인해 주요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투자나 첨단 칩 생산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 가드레일 규정을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말 내놓은 ‘미국과 EU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171억달러(약 288조4000억원), 150억달러(약 20조원)를 향후 10년간 미국 내 반도체 설비에 투자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 측으로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축소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어 주요국에 비해 반도체 수출·생산에서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당장 가드레일 규정만으로도 중국 내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의견 역시 나온다. 삼성은 전체 낸드플래시 반도체의 30~40%를 중국 시안에서, SK하이닉스는 전체 D램의 절반가량을 중국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다.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앞서 지난 4월 진행된 한 토론회에서 “미국 칩스법 가드레일 조항 중 중국 내 공장의 웨이퍼 투입량을 10년에 5%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건 사실상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통상 한장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칩 수가 증가해도 각 칩의 가격은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고성능 칩을 지속적으로 만들려고 하면 원가는 올라가는 구조다. 이 경우 이익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칩 회사는 웨이퍼 투입량을 늘려 칩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칩 생산량 확대에 제동을 걸면,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대중국 투자 제한, 초과 이익 환수, 민감 정보 제출 등 까다로운 신청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도 여전히 논란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통제와 관련해 한국 기업에 대한 유예 조치가 내달 종료를 앞둔 가운데, 미국이 중국 ‘화웨이폰 쇼크’로 인해 조치를 연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선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이 다른 곳에 비해 비싸다’는 불만 역시 지속적으로 쏟아지며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