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총회 열어 ‘한경협’ 새 간판
4대그룹 가입, 위상회복 동력 얻어
정경유착 근절 ‘윤리위’ 역할 주목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합류 속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새출발한다. 류진 한경협 신임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정경유착 근절을 내세웠다. 이를 위한 핵심 기능은 한경협에 설치될 윤리위원회다. 한경협의 새출발에 동참하면서도 전경련의 발목을 잡았던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를 우려하는 4대 그룹의 시선이 여전한 가운데, 류 회장을 필두로 한 한경협이 국내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오전 전경련은 임시총회를 열어 한경협으로 간판을 바꾸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류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한경협이 신뢰받는 경제단체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고, 윤리위원회를 실천해 단순한 준법감시를 넘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윤리기준을 세우고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가 경제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며 “국민과 소통 위해 노력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도 힘쓰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회장직 수락 이유에 대해 “우리 경제가 글로별 경쟁에서 활로를 찾아나가는 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류 회장의 취임과 더불어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한경협 가입이 유력해지면서, ‘경제단체 맏형’으로서 위상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삼성은 삼성SDI와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이 임시이사회를 열고 전경련 재가입과 관련된 회사 측 보고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어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은 현재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소속으로, 전날 합류의사를 밝히지 않은 삼성증권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전망이다.
다른 그룹의 가입은 큰 무리없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SK그룹은 한경연 회원사인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가 각사 이사회에 현안 보고를 마쳤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과 LG그룹(㈜LG·LG전자) 역시 내부 검토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까지 현대차는 “아직 기존 회원사 탈퇴 부분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고, 한경협이 새롭게 출범하고 쇄신한다고 하니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4대 그룹은 여전히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류 회장이 취임사를 통해 ‘국민의 기준에 부응하는 윤리기준을 세우겠다’고 밝힌 이유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도 지난 5월 전경련이 내놓은 혁신안을 ‘선언적 의미’ 정도로 평가하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 준법위와 협약을 맺지 않은 삼성증권이 정경유착 우려를 벗어내지 못하고 전날 깊은 고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준법위와 협약을 맺은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경우 향후 한경협이 정경유착이 우려되는 행태를 보일 때 준법위의 판단에 따라 2중, 3중으로 정경유착을 차단할 근거를 마련하는 게 가능하다”며 “그러나 삼성증권의 경우 준법위와 협약을 맺지 않아 따로 정경유착을 막아줄 방패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SK·현대차·LG 역시 한경협의 정경유착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들 그룹은 이런 우려에 따른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한경연의 회원 자격 승계에 대한 논의하고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전경련 복귀’와는 다르다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이제 공은 한경협에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5월 전경련은 윤리헌장을 제정하는 한편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정경유착을 차단하는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윤리헌정에 담길 주요 내용은 ‘정치·행정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이 거론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협회의 윤리적 경영현황을 심의하는 협의체로 일정 금액 이상 소요되는 대외사업 등을 점검하고 논의한다. 논의 결과도 국민들에게 공개해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위원은 회원사를 포함해 사회 각계에서 추천받은 명망가 등 엄정한 기준으로 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삼성 준법위부터 각 그룹까지 한경협의 출범과 관련된 정경유착 가능성을 깊게 우려하는 상황으로, 이에 대한 극복방안을 한경협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경협은 22일 총회 의결 후 산업통상자원부 승인 결정이 나면 새 조직의 한글로 된 로고를 사용할 예정이다. 적용 시기는 9월 이후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 건물 앞의 표지 비석과 홈페이지 등에 반영될 예정이다. 현재 단체 영문명인 FKI(The Federation of Korean Industries)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상근부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의 부임은 류 회장 정식 취임 후 회장 일임 하에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으로 취임한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6개월 임기를 마치고 상임고문으로 활동한다.
김지헌·서재근 기자
raw@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