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3% 부담 시행사가 수익 독식
금융사 리스크 큰데 수익기회 제한
부실 발생시 시스템위기 확산될 수
업계 성과급잔치, 당국은 위험방치
美리먼·中헝다사태 교훈 잊혀진 듯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 중앙은행은 초저금리와 함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금융완화 상태가 금융긴축(tight money)의 반대여서 ‘이지 머니(easy money)’라고도 불렀다. 영어사전에서 ‘easy money’의 본 뜻은 ‘쉽게 번 돈’이다.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투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초저금리 시대에 쉽게 돈을 번 이들이 상당하다.
문제는 금융긴축으로 상황이 바뀌면서 쉽게 돈을 벌던 사업들이 경제를 위협하는 괴물이 됐다. 과도한 차입(leverage)이 촉발한 기대위험(risk)과 기대수익(return) 간의 균형이 파괴된 결과다. 싸게 많이 끌어온 돈으로 큰 수익을 누리던 곳들에서 더욱 뚜렷하다. 차입비율은 큰 데 투자 주체의 위험부담이 적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파장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다. 그 구조적 문제를 잘 드러난 사건이 있다. 2021년 터진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이다. 시행사인 ‘성남의 뜰’의 보통주 주주들만 적은 투자로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 사건이다. 이들이 자본으로 낸 돈은 전체 사업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금융회사들은 돈을 더 많이 냈지만 수익은 제한됐고 무거운 손실 위험을 떠안았다.
‘성남의 뜰’에는 화천대유와 SK증권특정금전신탁(천화동인 1~7호)가 보통주 6만999주를,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하나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이보다 13.2배나 많은 우선주 93만1주를 출자했다. 총발행주식 대비 보통주는 7%에 불과하지만 사업을 지배한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사실상 차입에 가깝다. 2021년까지 배당금을 보면 보통주 주주가 4040억원, 우선주 주주가 1851억원이다.
시행자는 건물 지을 땅을 사기 위해 시행사를 설립한다. 이때 시행자가 내는 돈은 땅 값의 10% 남짓이다. 나머지 돈은 금융회사에서 빌려오는데 땅 만으로는 담보가 부족해 시공사(건설사)나 증권사의 보증을 더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증을 서야했다. 증권사는 실제 돈을 직접 빌려주지 않고도 보증으로만 높은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어 적극적이었다.
증권사들은 과연 부동산 PF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금융감독원은 지난 24일 22개 증권사가 지급한 성과급 내역을 공개했다. 2021년에는 전체 성과급 1조2141억원 가운데 5458억원이, 2022년에는 7345억원 가운데 3525억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자금난으로 유동성 지원을 받은 증권사들도 770억원을 지급했다. 성과급이 이정도면 회사는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뜻이 된다.
땅을 확보하는 것까지가 브릿지론(bridge loan)이다. 땅 구입 후 개발 허가가 나면 본PF로 전환한다. 땅 값으로 빌린 돈과 이자는 새로운 금융회사에서 빌려서 갚고 공사대금은 분양으로 마련한다. 선분양을 위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이 필요하다. 대신 땅 값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담보권 행사가 제한된다. 분양 전망이 어두우면 브릿지론에서 본PF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이유다.
저금리 시대에는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이들이 많았다. 땅 사서 건물 지으면 대부분 ‘완판’됐다. 분양대행으로 돈을 번 이들과 건설사들도 시행에 뛰어들었다. 총 사업비의 3%만 투자하면 개발이익 대부분을 챙길 수 있는 이른바 ‘대박 아이템’이 됐다. 1000억원짜리 개발프로젝트가 있다고 치자. 땅 값이 300억원, 시공비가 600억원, 개발이익이 100억원이라면 시행사는 땅 값의 10%만 내면 된다. 30억원을 투자해 100억원을 버는 셈이다. 투자금 대비 30배 가까운 차입(leverage)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미국은 시행사가 땅 값을 빚이 아닌 자본으로 조달한다. 총 사업비의 10%를 투자해 차입비율은 우리의 1/3 이하다. 시행사 위험부담이 커 그만큼 사업추진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적게 내고 많이 버는 구조는 사업이 잘 안될 때 부작용이 심각하다. 많이 내고도 적게 버는 쪽이 손실을 더 많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0억원 어치 땅을 샀는데 개발이 좌초되면 시행사는 30억원만 손해 보면 된다. 270억원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땅 값이 하락 폭에 따라 30억원 이상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사업장이 많으면 금융회사 손실이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 금융회사를 도와주기도 애매하다. 대부분이 2금융권인 이들은 부동산 호황기에 많은 돈을 벌었고 관련 덕분에 천문학적 성과급 잔치까지 벌렸다. 돈 잘 벌 때 위험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위험에 대한 경계로 자칫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애꿎은 대출자들이 추가 이자부담을 져야 한다. 금융회사들의 위기를 방관만 하기 어려운 이유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이 무엇을 했는지 묻지않기 어렵다. 자금의 97%까지 차입이 되는 구조가 가능한 게 정상일까? 금융다국의 권한이 강력한 이유는 금융회사의 탐욕은 자칫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전체의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험 대비에 더 철저했어야 했다. 앞서 교훈도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2021년 중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촉발한 개발사 헝다(恒大)그룹 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