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IR 설명회서 자신감 드러내
AI 수요 늘면서 HBM 시장 치열해져
“글로벌 리더 간 기싸움 팽팽”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SK하이닉스는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패키지(반도체 칩이나 웨이퍼를 결합하고 포장해 제품화하는 것)를 개발했다. 내년 출시 예정인 HBM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다.”
지난 2013년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후 인공지능(AI) 관련 칩 시장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부상한 SK하이닉스의 기술력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SK하이닉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기업설명회(IR)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HBM 기술에 대한 SK하이닉스의 전망과 관련된 질의응답이 오갔다.
SK하이닉스 측은 독보적인 패키지 기술을 앞세워 삼성전자나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위기다.
최근 생성형 AI가 정보기술(IT) 산업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대역폭이 넓어 정보 전송 속도가 더 빠를 수 있고, 용량이 커서 저장 능력이 우수한 HBM 메모리 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SK하이닉스는 AI 관련 최근 수요가 폭발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HBM 중 90% 이상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HBM은 현재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 순의 제품명으로 개발되고 있다.
IR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보다 기술상 우위에 있다’는 점을 애널리스트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후공정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했던 HBM은 팹(생산공장)과 패키지 부서 간 긴밀한 소통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하여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패키지를 개발하고, 협력사와 핵심적인 소재 등을 장기간 독점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스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필(MR-MUF)’ 방식 패키지를 강조했다. MR-MUF는 SK하이닉스가 최초로 개발한 기술로 현재도 SK하이닉스만 이 기술을 사용해 HBM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현재 양산 중인 4세대 제품(HBM3)을 넘어 내년에 출시 예정인 제품(HBM3E)에서도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MR-MUF 방식이 주효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MR-MUF 패키지는 반도체 칩을 회로에 부착하고 칩을 위로 쌓아 올릴 때 칩과 칩 사이 공간을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라는 물질로 채워주고 붙여주는 공정을 말한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 보호재’를 주입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앞서 경쟁사들은 이 칩 공정에 ‘논컨덕티드필름(NCF)’ 기술을 활용했다. NCF는 칩을 쌓아 올릴 때 칩과 칩 사이에 일종의 ‘필름’을 사용해서 쌓는 방식이다. EMC를 활용한 기술을 경쟁사들은 확보하지 못했단 설명이다.
MR-MUF 패키지는 HBM 칩 외형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2단 HBM3를 만들면서 제품 한 개 안에 쌓는 D램 수를 기존 8개(16기가바이트)에서 12개로 늘려 용량을 50% 가량 높였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현존 최대 용량 24기가바이트를 구현했다. 이때 칩의 두께를 유지하면서 용량(적층수)을 높이기 위해 D램 칩을 40% 얇게 만들어 위로 한 개씩 쌓아야 되는데, 이 경우 얇아진 칩이 쉽게 휘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막고 칩의 두께를 유지하는 데 MR-MUF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가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공정을 동시에 제공하며 HBM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고객사는 어느 한 업체가 주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업체들 간 협업을 현재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SK하이닉스의 자신감은 최근 HBM 시장에 민감한 삼성 반도체와의 신경전 속에 나온 발언이라 주목된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은 지난 5일 임직원 소통행사인 ‘위톡’에서 “삼성 HBM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50% 이상”이라며 “최근 HBM3 제품이 고객사들로부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HBM 관련 시장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50%), 삼성전자(40%), 미국 마이크론(10%) 순이었다.
SK하이닉스가 HBM 5세대 제품인 HBM3E를 필두로 점유율 격차를 더 벌리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점유율이 38%, 9%로 소폭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 사장의 “삼성 HBM 점유율이 50% 이상”이라는 발언은 시장조사업체의 리서치를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장에서 HBM과 같은 새로운 메모리 칩이 주목받으면서, 글로벌 리더 자리를 두고 삼성과 SK간 기싸움이 팽팽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