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 피하고, 식초물 뿌리고…
해충 아니지만 “벌레 무서워요”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박지영·이준태 수습기자] 서울 금천구에 사는 최모(27) 씨는 요즘 매일 검은색 마스크 쓰고 검은색 옷을 자주 입는다. 최씨는 얼마 전 흰색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갔다 ‘러브버그의 습격’을 받았다. 최씨는 “버스 기다리고 있었는데 러브버그가 흰색 마스크로 날아들어서 기겁했다”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검은색을 싫어한다고 해서 검은색으로 다 바꿨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 도심 곳곳에 러브버그·동양하루살이가 출몰하면서 벌레 피하기에 돌입한 시민들이 늘고 있다. 두 벌레 모두 해충은 아니지만, 벌레가 익숙하지 않은 시민에게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벌레들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다.
러브버그는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던 벌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미기록종으로 새롭게 기록됐고, 최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해당 종 연구에 돌입했다. 동양하루살이는 6월 초까지 한강 근처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다 최근에는 남한강과 남양주쪽에서 재발생하고 있다. 러브버그와 동양하루살이 모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독성이나 질병 전파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벌레가 무서운 시민들은 지자체에 방역을 요청하거나 살충제를 뿌리는 등 벌레 없애기에 나섰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러브버그 민원만 5100여건에 달한다. 최씨처럼 밝은 색을 좋아하는 벌레를 떨치기 위해 ‘흰 색을 기피’하는 시민도 늘고 있다. 은평구 A 치킨집 점주는 “인터넷에선 모기약 뿌려라, 물 싫어하니까 계피물 뿌려라 하는데, 게다가 식초물까지 뿌려봤지만 소용이 없다”며 “살충제를 뿌려야만 죽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벌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흰색 차를 도색하고 싶다”는 글을 남긴 네티즌도 있었다.
하루 일과를 벌레에 맞춘 시민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모(31) 씨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벌레 일정’을 짜 움직이고 있다. 이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고무장갑을 끼고 죽은 러브버그를 치우고, 출근 전에 살충제를 여기저기 뿌린다”며 “자기 전에는 방충망을 점검한다. 벌레가 너무 무서워서 살충제만 10만원 넘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5월부터 벌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익충이라지만 벌레랑 함께 살 수 없어 몸을 바삐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예년보다 빨리 등장한 도심 벌레 떼 덕분에 살충제 판매는 지난해보다 늘었다. 지마켓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모기기피제는 지난해 대비 14% 증가해 소폭 상승했지만, 해충퇴지용품은 63%로 크게 늘었다. 위메프에서도 최근 한 달간 살충제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27%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차량을 소유한 이들에겐 러브버그를 피해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충정로 B 자동차 정비소 책임자는 “벌레를 없애려고 와이퍼를 계속 움직이다 보니 와이퍼를 교환해야 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벌레가 에어컨 필터 사이로 들어가는 경우를 우려해 내관을 점검해달라는 손님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년보다 벌레가 많이 증가한 배경에는 이상기후의 영향도 있다고 말한다. 박선재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겨울철에 온난화 현상이 있으면 수온이 올라가면 유충이 성장도 빨라지고 죽지 않고 오래 생존하며 사망률이 좀 낮아질 수 있다”며 “다만 기후변화만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서식지 환경, 먹이 자원, 천적의 변화를 알아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binna@heraldcorp.com
g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