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엔화와 달러 환율이 연일 하락하는 가운데, 주요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반등에 배팅한 ‘환차익’ 물량이 대거 유입된 영향이다. 특히 이달에만 4대 시중은행 엔화예금에 약 1000억엔 이상의 자금이 몰리는 등 엔화에 대한 환테크족의 관심이 유독 뜨거운 상황이다.
엔화예금 잔액 올해 최고치…“시기별 분할매수로 안정성 확보해야”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지난 12일 기준 엔화예금 잔액은 약 8071억4000만엔으로 지난달 말(6978억6000만엔)과 비교해 약 7영업일 만에 1092억엔(7%)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비교적 높은 잔액 상승 추이를 보인 지난달과 비교해서도 약 세 배가량 빠른 증가 속도다. 5월 한 달간 4대 은행의 엔화예금 증가폭은 1191억엔으로, 이달 12일까지 증가폭과 유사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원/엔 환율이 급락하며, 환율 반등으로 인한 차익을 노린 수요가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3일 기준 원/엔 환율은 910.62원으로 하루 만에 약 13원가량 줄어드는 등 빠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6월 880원대까지 하락한 이후 900원대를 회복했던 엔화는 8년 만에 다시금 8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가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정책을 펼쳤지만, 일본 중앙은행(BOJ)은 ‘제로금리’ 통화정책을 고수했다. 이에 달러화 초강세와 함께 엔화 가치 하락세가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는 일본 통화정책 수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조금씩 강세 추이를 보였다. 그러다 최근 BOJ가 초완화적 기조를 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며, 다시금 엔화 약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엔화예금은 대부분 0%대 이자율을 제공하는 등 이자 수익이 없다. 일본 ‘제로금리’의 영향 때문이다. 또 보유한 엔화로 투자 가능한 상품 또한 선택권이 많지 않다. 따라서 엔화예금의 경우 실사용 목적을 제하고는, 대부분 환차익 목적의 수요로 여겨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예금의 경우 환율 등락에 따른 예금 잔액 추이가 뚜렷한 편”이라며 “최근 엔화예금 증가세도 환차익 목적의 수요가 견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수 우리은행 한남동금융센터 PB팀장은 “엔화예금의 경우 950원대에 진입했을 때부터 서서히 수요가 살아나다가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환율이 더 빠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최근 10년 추이를 봤을 때 거의 최저점에 머무는 수준이기 때문에 엔화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율 하락이 우려된다면, 시기별 분할매수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美 금리 동결 전망에 달러 가치도↓…“지금 환율도 낮은 거 아냐”
달러의 경우도 최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이달 12일 기준 550억1000만달러로 지난달 말(543억8000만달러)와 비교해 7억달러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40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6거래일 연속 1300원 아래로 떨어지면서다.
원/달러 환율 하락세는 이날(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해지며 나타났다. 실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업계 전문가 4명중 3명은 금리 동결을 점치고 있다. 여기다 외국 자금의 증시 유입 힘을 보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자금은 114억3000달러 순유입을 기록했다.
추가로 달러 예금의 경우 예금금리가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실제 이날 기준 4대 시중은행의 달러 정기예금 금리는 1년 만기 기준 5.006~5.07%로 5%를 상회하고 있다. 3%대 중후반에 머물고 있는 원화 정기예금에 비해 매력도가 높은 셈이다. 주가연계증권(ELS) 등 달러로 운용 가능한 투자 상품이 많다는 점도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환차익을 노린 달러예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달러가 현재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시장의 기대처럼 미 금리 동결이 현실화할 경우 달러화의 단기 약세 압력은 커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환율이 1300원을 중심으로 등락하겠지만, 무게 중심은 1200원대 안착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PB팀장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미국에 돈이 빨려 들어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오르는 현상이 벌어졌지만, 최근 10년 평균으로 살펴봤을 때 달러는 1130원대가 적정 환율”이라며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제 추이가 엇갈리거나 하는 경우 다시 달러가 상승할 수 있겠지만, 지금 환율이 결코 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