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스타벅스 등 주요기업 CEO “中 사업 이어갈 것”
일론 머스크 “미중 관계, 제로섬 아냐…디커플링 반대”
양국 교역관계 역대 최대…고숙련 인력 교류도 확대
“中 경제 붕괴시키고도 美 번성할 수 없어” 지적
한계 느낀 美,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워싱턴 정가의 대중 규제가 전례없이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거물급 기업인들이 너나없이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정부의 압박에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다. 14억 시장과 거대 생산시설이 있는 중국과 등을 지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중국에 있을 것”이라고 밝힌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의 말이 이를 대변해준다.
최근 중국을 찾은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은 대 중국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상하이에서 열린 자사 연례 글로벌 차이나 서밋 행사에 참석한 다이먼 CEO는 인터뷰에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중국에 있을 것” 이라며 “중국과의 무역은 줄겠지만 그것은 디커플링(탈동조화) 아닌 디리스킹(위험제거)”이라고 잘라 말했다.
압도적 1위 미국 은행 수장이자 은행 위기 해결을 위해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손발을 맞춘 다이먼 회장의 이 발언은 반도체,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을 배제하지만 그밖의 분야에서는 교류를 지속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대표 커피전문점 체인 스타벅스의 랙스먼 내러시먼 신임 CEO도 전날 중국에 도착해 “중국이 스타벅스의 최대 시장이 되길 바란다”며 오는 2025년까지 중국 전역에 9000개의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4일 상하이를 방문한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CEO는 “중국 파트너(상하이차)와 손잡고 신에너지차, 커넥티드카 등의 혁신에 힘쓰고 장래에 더 많은 새 브랜드와 모델,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중 견제 정책을 앞장서 비판했다. 지난달 30일 3년여만에 중국을 방문한 그는 기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친강 외교부장과 왕원타오 상무부장, 진좡룽 공업정보화부 부장등 중국 고위관료 3명을 연이어 만났다.
특히 친강 외교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테슬라는 공급망 디커플링에 반대하며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 확장하고 중국의 발전 기회를 공유할 의향이 있다”며 중국을 두둔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나아가 “양국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상대가 그만큼 잃는 제로섬이 아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전략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머스크는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의 쩡위친 회장을 만나 배터리 합작 공장 설립을 타진했으며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역시 이달 중 중국을 방문해 텐센트와 틱톡 모기업 바이트댄스 관계자들을 접촉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가 기술수출통제 정책을 통해 엔비디아가 첨단 반도체 칩셋을 판매하는 것을 막은 업체들이다.
백악관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미중 경제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런 상호연결성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미국 CEO들의) 방문이 경제적 경쟁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적 도전을 차단하고 그 과실을 미국 기업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놓지 못하는 것은 양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스는 “중국 시장은 지정학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에게 너무 크고 포기하기엔 너무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양국간 상품 무역 규모는 지난해 6807억달러에 이르러 2018년 6635억달러 이후 치고치를 경신했다. 그 결과 중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세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로 남아있다.
중국은 미국의 학제간 연계 프로그램인 스템(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박사 과정생을 가장 많이 공급하고 있는 국가이며 고숙련 H-1B 비자 소지자를 인도 다음으로 많이 배출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NYT)의 기고에서 “오늘날 융합된 세계에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붕괴하는데 미국이 여전히 번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을 세계 경제에서 고립시키려는 노력이 지나칠 경우 대만과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동맹국과 파트너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미국의 경제 외교에 부정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우리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을 받을 경우 중국 내 반도체 생산설비 증설 제한을 기존 5%에서 10%까지 늘려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최근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완전힌 디커플링을 부인하는 대신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 등 전략 자원을 중심으로 디리스킹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정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이먼 CEO는 “바이든 대통령과 옐런 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며 “태평양 건너편에 앉아서 서로에게 소리만 지를 것이 아니라 진정한 관여를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