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운용자금 유치 경쟁 위해

장기채권 투자하다 거액 손실

금리하락기엔 수익에 큰 기여

금리상승기에 위험요인 돌변

회사측 “고객자산 유동성지원”

모기업 실적에까지 부담 미쳐

KB·하나 등 사모펀드 사태에도

영업 우선, 내부통제 소홀 의심

합법인가 위법인가…KB증권은 왜 고객자산을 비싸게 샀을까 [홍길용의 화식열전]

증권가의 ‘은밀한’ 영업 관행이 드러나면서 대형 금융그룹의 내부통제의 허점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파생결합증권(DLF) 및 라임펀드 사태를 겪은 뒤에도 여전히 수익을 위해 무리한 영업행위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객 자산에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법과 제도의 허점도 살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하나금융그룹 계열사인 하나증권을 검사하던 중 KB금융지주 자회사인 KB증권과 연관된 이상거래 징후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KB증권이 지난해 하나증권 신탁에 맡긴 회사 자금으로 고객자산을 비싼 값에 산 정황이다. 금감원은 하나증권에 KB증권도 검사할 계획이다.

시장에 알려진 사건의 개요는 KB증권이 고객이 맡긴 단기자금으로 단기채권상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데서 출발한다. 단기투자상품은 만기가 짧은 채권이나 유가증권에 투자돼 가치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증권사 간 상품판매 경쟁이 치열하다.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맡기는 입장에서는 수익률을 보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수익률을 더 높이는 게 증권업계의 숙제다.

KB증권은 고객이 단기로 운용해달라고 맡긴 돈을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은 만기가 짧을수록 원리금 회수까지 위험이 낮아 수익률(yield)가 낮다. 같은 원리로 만기가 길수록 기대수익률도 높아진다.

일례로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91일만기 통화안정채권 금리는 지난해 2분기 평균 1.587%였다. 1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211%,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14%로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진다. 민간 채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분기 91일 만기 기업어음(CP) 수익률은 1.99%였는데 3년 만기 회사채(AA-)는 3.873%로 배 가까이 높았다.

상품 약관에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기운용 상품에 장치 채권이 들어가면 만기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채권은 만기까지 가면 원리금이 보장된다. 상품만기까지 보유채권 만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시장에 처분해 현금을 만들어야 한다. 자칫 원리금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만기가 길더라도 값이 하락하지 않고(금리가 상승하지 않고) 시장에서 현금화도 쉽다면 문제가 없다. 고객이 맡긴 돈의 만기에 맞춰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면 된다. 채권금리까지 하락하면 금상첨화다. 만기가 길수록 시세차익은 커진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이런 선순환(?)이 가능했다. 상품과 보유채권 만기를 맞추지 못했더라고 수익이 더 났다면 고객도 문제 삼을 이유는 적다.

문제는 금리가 올라 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다. 금리 상승에 따른 가격하락 폭은 만기가 길수록 더 깊다. 애초 약속처럼 만기가 짧은 채권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손실이 나게 된다. 지난해 하반기에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해 3분기 금리는 91일짜리 통안채가 2.9%, 1년·3년 만기 국고채가 각각 3.07%, 3.45%로 오른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4분기에는 각각 4.98%, 3.72%, 3.91%까지 급등한다.

자본시장법 제64조 1항은 금융투자업자는 법령·약관·집합투자규약·투자설명서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업무를 소홀히 하여 투자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 위반 또는 소홀에 따른 책임은 배상이다. 다른 벌칙은 없다.

정상적인 해결책은 고객에게 위반 또는 소홀 사실을 고백하고 손실을 배상하는 방법이지만, 자칫 해당 고객과 거래가 끊어질 위험이 크다. 해당 법인 고객도 손실이 난 이유와 이를 배상 받은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법을 어기거나 업무를 소홀히 한 기관에 계속 돈을 맡기기는 어렵다.

증권사가 고유자산으로 조용하게 손실을 메워주는 방법도 있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원리금 회수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투자일임자산이나 신탁자산은 시가평가가 아닌 장부가 평가가 허용된다. 증권사들도 다른 금융회사에 자산을 맡기고 있다. 고객 계정에서 보유한 채권을 이들 계좌에서 비싸게 사줘도 부도가 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다. 법에서도 용인하는 방법이다.

자본시장법 제98조는 투자일임업자는 투자일임재산을 운용함에 있어서 투자일임재산으로 투자일임업자 또는 그 이해관계인의 고유재산과 거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한다. 다만,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즉 일반적인 거래조건에 비추어 투자일임재산에 유리한 거래는 가능하다.

KB증권은 하나증권 신탁에 맡긴 돈으로 약관과 다른 운용으로 손실을 본 고객 계좌의 채권을 비싸게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증권사와 고객의 문제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다음 문제가 남는다. 손실을 메워줘야 하도록 고객자산을 운용한 것이 화근이 됐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제64조 2항에서는 금융투자업자가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로서 관련되는 임원에게도 귀책사유(歸責事由)가 있는 경우에는 그 금융투자업자와 관련되는 임원이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못박았다. 이번 거래에서 KB증권이 감당한 손실은 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고경영자(CEO) 수준의 의사결정이 필요했을 액수다.

KB증권은 운용상에는 아무 법적 문제가 없었으며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거래가 어려워진 고객자산의 현금화를 위한 유동성지원이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동성 지원이 금융투자회사의 법적 의무가 아니다. 법적 이유없는 고객자산 고가 매수는 손실보전금지 위반과 함께 경영진의 배임 가능섣도 높인다

이번과 같은 거래를 KB증권 경영진이 그동안 어떻게 인지하고 처리를 했는지는 향후 금감원 조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점에서 내부통제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B증권 내부통제기준을 보면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통제위원회는 반기 1회 이상 회의를 열어야 한다. 위원회는 금융사고 등 내부통제 취약부문에 대한 점검 및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난해 KB증권 사업보고서 상에는 이와 관련된 조치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