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할리우드 영화·방송 프로그램 작가들이다. 이들은 영화·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연맹(AMPTP)과 벌여온 협상이 결렬되면서 파업을 알리기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
이들이 작가들의 처우개선과 함께 주장하는 것은 바로 ‘AI(인공지능)기술 사용 제한’이다.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하는 대신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사용돼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글로벌 문화산업 1번지’인 할리우드에서는 벌써 AI가 영화나 드라마의 대본 창작 과정에 활용되면서 일부 ‘인간 작가’들의 몫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도 배우, 음악가 등으로 구성된 연예종사자협회가 최근 AI로부터 예술가들의 권리와 생계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며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AI의 등장이 처음부터 문화·예술업계에 위협이 되진 않았다. ‘창작’이라는 작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으로, 결코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개발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AI가 과거의 텍스트, 동영상, 이미지 등으로 구성된 빅데이터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서양 격언처럼 사실 사람의 창의성도 과거의 위대한 업적이나 역사 등에서 창작의 원료를 가져와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과거의 업적이나 역사는 빅데이터로, 자신의 스타일은 사회적 평균치 기준으로 치환하면 인간이나 AI나 콘텐츠 생성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AI는 일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평균치의 결과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중박’ 이상의 성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인간 창작자’보다 훨씬 효율적인 셈이다.
‘AI를 창작 과정에서 배제하다’는 생떼를 쓰는 것으로 AI가 인간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내 밥그릇을 지키자고 AI라는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인류의 번영을 포기하는 것은 더 어불성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창작자’라는 직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그 행태나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는 과감히 AI에 넘기고 보다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부분을 주도하는 노력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창작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하지만 AI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저작권 보호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확대돼야 할 사안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지난 1967년 발표한 에세이 ‘저자의 죽음’을 통해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저자를, 창작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듯하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AI로 대체되면서 존재 자체가 희미해질 수도 있다. 물론 주요 7개국 기술담당 각료들이 모여 글로벌 규제를 합의할 정도로 AI에 대한 국제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지만 거대한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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