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개인회사 통해 후계구도 다져
뜻밖의(?) 주가급등은 여러모로 기회
김익래·김영민 폭락직전에 거액 마련
매물 소화후 반등 노린 투자자금 유입
주주관계에 소홀, 기관들도 이미 외면
경영철학 변화 없이 재평가 어려울 수
“일이 벌어졌을 때 이익을 얻은 자가 있다면 그가 주동자다. 손해를 보는 자가 있다면 이익을 얻는 자도 살펴야 한다(事起而有所利, 其尸主之 有所害, 必反察之).”-한비자(韓非子) ‘유반(有反)’
4월24일부터 한국SG증권 창구의 대량 매도를 시작으로 나흘간 주가가 폭락했던 8종목 주가가 닷새만에 큰 폭으로 반등했다. 대규모 매물이 소화되면서 차액결제계약(CFD)이 촉발한 ‘빚투’ 반대 매매 사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배경과 원인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는 이제부터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극적 반전에 가장 안도할 이들은 누굴까? 주가 급등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추가 폭락에 가슴 졸였던 해당 기업의 ‘회장님’들일 지 모른다. 과연 금융당국의 조사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일까?
이번 8종목은 모두 총수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기업이다. 워낙에 주주활동에 소극적인 기업들이었지만 어마어마한 주가 흐름에 아주 무관심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특히 7종목은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곳이다. 삼천리와 다올투자증권을 제외한 6종목의 지배구조는 거의 ‘판박이’라 할만큼 닮아 있다. 대성홀딩스, 서울도시가스, 세방, 하림지주, 선광, 다우데이타는 모두 총수와 총수의 개인회사가 공동으로 지배하는 구조다.
비상장 개인회사를 활용하면 상속·증여세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경영권을 넘기기 용이하다. 비상장사 기업가치는 고무줄이다. 합법적(?)으로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다만 세금 부담을 아주 피할 수는 없다. 삼성조차 예외가 없었 듯이 기업총수 일가에게 큰 돈을 마련할 재원은 주력 기업의 상장 주식이다. 주가가 높을수록 적게 팔아 많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8개 종목 최대주주 모두 시세 조종이 의심될 정도의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지켜보면서도 불리하지 않은 흐름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총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가 상승의 수혜를 누리기도 했다.
국내 개인주식중개 1위 업체이자 CFD 서비스를 제공 중인 키움증권 김익래 회장은 폭락 불과 나흘 전인 4월 20일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주를 시간외매매로 처분해 605억원을 마련했다. 자녀들의 증여세를 대신 내주기 위해서라는 게 키움 측 설명이다.
김 회장 아들인 김동준 대표는 이미 ‘이머니’라는 비상장사를 활용한 후계구도를 완성해 상당한 절세효과를 누렸다. 다만 2021년 김 대표를 비롯한 3남매는 김 회장으로부터 200만주를 증여(1주당 1만3400원) 받는다. 증여가액은 277억원으로 증여세는 약 14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키움 측 설명대로면 김 회장은 양도세(세율 25%)를 낸 후 현금을 증여한다. 약 450억원의 현금을 증여받은 3남매는 증여세(최고 55%)를 납부한 후 200억원 정도를 갖게 된다. 200억원 가운데 140억원을 주식 증여 세금으로 내면 된다.
결국 277억원 증여에 따른 세금으로 550억원을 내겠다는 뜻이다. 김 회장의 현금 자산은 상당하다.그는 키움증권 비상근 회장이지만 매달 7750만원 씩 연 9억3000만원의 급여는 물론 매년 억대 상여금도 받고 있다. 비상근으로 고액 급여와 상여를 모두 받는 금융회사 총수는 김 회장이 유일하다.
서울가스 김영민 회장도 폭락 사태 1주일 전인 4월 17일 10만주를 시간외매매로 처분했다. 총 발행주식수 500만주 가운데 무려 2%에 달하는 규모다. 평균단가 45만6950원으로 457억원 상당이다. 서울가스 후계는 김 회장이 98% 지분을 가진 서울도시개발 주식만 넘기면 된다. 승계 과정에서 소요되는 세금 마련이 가장 큰 숙제인데 이번에 일찌감치 큰 짐을 덜게 된 셈이다.
대성홀딩스도 보유 중인 서울가스 지분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매각, 상당한 차익을 거뒀다. 대성홀딩스는 서울가스와 형제기업이다. 대성홀딩스는 연결순이익이 2021년 239억원에서 2022년 49억원으로 급감했지만 올해 40억원의 현금배당을 유지했다. 대성홀딩스는 김영훈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무려 72%가 넘는다. 배당의 70%는 김 회장 몫이다.
선광, 세방, 삼천리는 주가 급등을 틈타 총수 일가가 직접 현금을 챙기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수혜는 누렸다. 선광은 2020년 말부터 2022년 7월에 걸쳐 최대주주 일가가 지분 일부를 매각했는데 1만원대 중반이던 주가가 9만원대까지 치솟으며 기대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세방은 2020년 4월 20여만주의 증여가 이뤄졌는데 이후 주가가 최대 17배까지 상승했다.
한바탕 난리에 지난 수 년간의 상승폭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덕분에 이들 8종목은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탄탄한 사업모델과 건전한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28일 반등의 배경이다. 실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 부담이 제기됐던 다올투자증권을 제외하면 나머지 7종목은 이렇다할 악재다 없다. 주가 폭락으로 지난 해말 기준 주가순자산배율(PBR)도 모두 1배 미만으로 떨어졌다. 주가수익배율(PER)도 서울가스와 선광 정도만 두 자릿수다.
하지만 이들 종목 주가가 얼마나 반등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8종목은 모두 주주환원에 적극적이지 않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일반주주 눈치를 살필 필요도 적다. 가치투자 꽤나 한다는 투자자들도 결국 손을 들고 떠날 정도다. 피델리티는 지난해 5월 서울가스 5% 주주 지위를 내려놨다. 삼천리도 주가 급등 한참 전인 2020년 3월 이전에 국민연금, 신영자산운용,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 등이 모두 떠났다. 대성홀딩스에서 신영자산운용이 지분을 매각한 것도 주가 상승이 본격 나타나기 전인 2020년 7월이다. 세방 주가가 급등세에 접어든 것은 2022년 하반기부터다. 국민연금과 한국투자밸류운용, 한화운용, 신영운용 등은 모두 그 전에 5%가 넘던 투자 지분을 정리했다. 하림지주, 선광은 최대주주 일가 외에는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없다. 기관들도 이들 종목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주주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기대를 접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