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가 대규모 추가 감산을 기습 발표하자 미국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비판을 확대하진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규모 감산 때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중동 지역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전날 OPEC+ 감산에 대해 “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감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전날 백악관 입장과 같은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는 “생산량이 아니라 가격에 집중하고 있다”며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미국 소비자를 위해 유가를 낮추고 석유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감산을 주도한 사우디를 향해 날을 세우기보다 미국 내 가격 안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의 누그러진 태도는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주재하는 등 중동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지난 80년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 “함께 계속 협력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는 커비 조정관의 언급은 이를 뒷받침한다.
현실적으로 감산에 따른 미국 내 직접적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우디는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원유의 약 60%를 생산하는 OPEC 내 최대 생산국으로, 석유 가격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미국의 주 원유수입국은 캐나다다. 더군다나 현재 국제유가는 80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감산 당시 100달러가 넘었던 것에 비하면 안정된 상태다.
또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약화된 것도 주요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 특사를 지낸 데이비드 골드윈은 블룸버그통신에 “OPEC은 원유 수요 증가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감산을 한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미국의 태도 변화의 이유다.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것은 즉각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3억7100만배럴로, 2022년 초 6억배럴에서 크게 줄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은 유가를 안정시키느라 퍼내 쓴 것이다. 때문에 전략비축유는 방출보다는 보충이 우선인 상황이다.
미국이 OPEC 국가들을 고소할 수 있는 ‘석유생산수출담합금지’(NOPEC) 법안이 다시 대두될 수 있다. 현재 OPEC+ 국가와 해당국 에너지 기업은 미국 반독점 법률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NOPEC법안이 통과되면 미 법무부는 OPEC+ 국가를 미 연방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상원 법사위를 통과했다. 상·하원 본회의를 거쳐 대통령 서명을 받으면 정식 발효된다.
석유거래기업 PVM의 타마스 바르가는 CNBC방송에 “OPEC+가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면서 미 의회에서 NOPEC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있는데다 사우디는 줄곧 NOPEC이 통과되면 미국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석유를 거래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어서 쉽지 않다.
미국 셰일업체들의 적극적 증산을 통한 맞대응도 쉽지 않다. 셰일 유전이 모여 있는 텍사스의 그레그 애버트 주지사는 감산 소식에 즉각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OPEC+가 100만배럴을 줄이면 텍사스에서 100만배럴을 늘려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수년 간 잠긴 셰일업체들의 유전 뚜껑을 쉽게 열 순 없다고 지적했다.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에서 100달러를 넘을 정도로 변동성이 커지면서 셰일업체들은 장기적인 계획이 요구되는 증산에 매우 신중해졌다.
이에 미 대형 셰일업체들은 지난 3년 간 증산과 이를 위한 투자보다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과 수익성 관리에 주력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치솟았을 때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서 증산을 요구했지만 셰일업체는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기록적인 이익을 내면서 이들의 선택은 옳았음을 입증했다. 픽커링에너지파트너의 댄 픽커링 설립자는 블룸버그에 “단기적인 변동을 기반으로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주주들의 승인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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