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KCGI의 DB하이텍 지분 매입 후폭풍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행동주의 펀드인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I)가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와 팹리스(설계전문) 기업으로 분사를 선택한 DB하이텍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DB하이텍 주가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이 회사 최대주주인 DB가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설령 지주사 전환을 해야 하더라도 이와 관련된 비용이 덜 드는 구조다. 그런데 KCGI가 지배구조 개선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DB하이텍 주가가 급등했다. DB그룹과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최근 KCGI는 DB하이텍의 지분을 7.05% 확보했다. KCGI는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국내 대표적인 행동주의펀드로도 유명하다. 지난 2020년 대한항공-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행동주의를 이끈데 이어 최근엔 오스템임플란트에 대한 주주행동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DB하이텍은 “(이러한 움직임에) 공식적으로 코멘트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KCGI는 DB하이텍이 주식시장에서 극도로 낮은 기업가치로 평가된다는 점에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KCGI 측은 “DB하이텍은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 특화된 공정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년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우수한 시장지위를 점유하고 있다”며 최근 4년간 연평균 약 26%의 놀라운 성장세와 2022년 영업이익률 약 46%에 달하는 우수한 수익성을 보여줬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3.5배 수준이라 너무 낮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 회사 사업성에 부합하는 투자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KCGI는 ▷일반주주들이 임명한 독립적인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를 설치해 권한과 책임에 따른 합리적인 임원 보수 산정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 등으로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이 되지 않도록 견제와 감시를 진행할 예정이란 설명이다. DB하이텍은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을 거론하며 글로벌 순수 파운드리 회사와 팹리스 기업으로서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주주들을 달래고 있지만, 회사 측의 이 정도 약속만으로는 주가를 부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소액 주주들의 우려가 크다.
DB하이텍은 지난달 29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도체 설계사업(팹리스)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부 분할안을 의결하면서 순수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으로 새 출발하게 됐다. 그러나 일부 소액주주는 이 분할에 반대하며 신설한 회사가 주식 시장에 상장해 모회사인 DB하이텍의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한국 주식시장에선 자회사가 상장하면 그 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한 모회사의 주가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로서는 손해다.
그런데 지주회사 전환의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DB하이텍의 주식 가치가 낮아져야 DB에 유리하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매년 말을 기준으로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지주비율 50% 요건)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전환시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는데 이때 상장사인 자회사의 지분율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아니면 2년 이내에 지주회사가 되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된다. 즉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 아니거나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이 안 되면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1월1일 기준 DB가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 전환 기준을 충족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고 지난해 5월11일 통보했다. DB하이텍 지분 12.42%를 보유한 DB는 2021년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6019억원으로 자산총액 5000억원 요건을 충족했고, DB하이텍 주식가액도 자산총액의 66%에 달해 지주사 전환요건을 달성했다. 코로나19와 반도체 품귀 현상 등으로 DB하이텍 주가가 오르면서 2021년말 DB하이텍 지분 가치는 4007억원이 됐다. DB는 공정위의 지주사 전환심사 결과 통지에 따라 지주사 전환일로부터 부여되는 유예기간인 2년 내에 지주사 전환 사유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자회사 지분 매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DB하이텍 주가가 오를수록 DB입장에선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해 하반기 DB하이텍 주가가 다시 급락하면서 DB의 고민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KCGI의 참전으로 또다시 DB하이텍의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 DB에 대해서는 김준기 창업회장 15.91%, 김남호 회장 16.83% 등 오너일가의 지분이 43.83%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KCGI가 등장하며 다시 DB그룹의 지주사 전환 이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앞선 DB하이텍 주총에서는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과 아들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보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부자는 지난해 DB하이텍에서 각각 보수 31억2500만원과 37억1000만원을 받았다. 회사 이사의 보수승인한도가 40억원에 불과한데 미등기 임원인 오너 일가가 70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아 주주들은 오너 일가가 등기임원에 올라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