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컨베이어벨트 위로 쓰레기가 쉼없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쓰레기더미 사이로 로봇팔이 분주하다. 그 와중에 쏙쏙 투명 페트병만 골라낸다.
쓰레기 재활용 선별장은 쓰레기대책의 최후 보루 격이다. 여기서 다시 쓸 수 있는 재활용품을 걸러내지 못하면 그 뒤론 이제 땅에 묻거나 소각된다.
버릴 때부터 잘 분리하면 선별장이 필요 없겠지만 여전히 쓰레기더미 속엔 돈 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섞여 나온다. 지금까진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골라내고 있다. 이마저 인건비 상승에 코로나 여파 등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게 ‘자원순환로봇’. 다시 쓸 수 있는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로봇이다.
최근 방문한 인천 남동구 한 재활용 선별장. 육중한 트럭과 불도저, 굴삭기 등이 바삐 오가는 사이로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서울 서대문·양천구, 인천 계양·남동·연수구 등에서 출발한 생활폐기물이 모인다. 1일 최대 200t에 달하는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고자 근무하는 인력이 120~150명이나 있다.
재활용 선별장에 도착한 폐기물들은 가장 먼저 수작업으로 선별에 들어간다. 컨베이어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쓰레기더미가 떨어졌다. 여기에 사람이 붙어 투명페트병과 캔, 플라스틱, 병 등 재활용 가능한 것들만 골라냈다. 라인당 5~6명씩 붙었지만 그래도 워낙 속도가 빨라 힘겨워 보였다.
이 중 한 라인은 2~3명만 배치돼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원순환 선별로봇이 있었다. 스타트업 에이트테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로봇 ‘에이트론’이다.
에이트론은 로봇팔로 쓰레기더미에서 투명페트병을 골라냈다. 에이트테크 관계자는 “선별장 특성에 맞게 여러 종류의 폐기물을 골라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에이트론은 사람이 손으로 재활용품을 분류하던 과정을 자동화해 카메라로 폐기물을 인식하고 로봇팔로 골라낸다.
얼핏 생각하면 자동화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빈 병을 고른다고 해도 병마다 외형, 색깔, 무게 등이 다 다르다. 디자인도 계속 바뀐다. 그래서 여전히 선별장은 인력이 불가피하다.
사람과 유사한 AI 기능이 자동화엔 필수다. 이 역시 오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에이트론도 사람과 유사한 수준으로 기능을 끌어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 폐기물업계는 고질적인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장시간 저임금으로 근무해야 하는 환경에 선별인력은 갈수록 고령화됐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달쓰레기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지난 몇 년간 일부 선별장은 밀려드는 폐기물을 제때 소화하지 못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도 자동화로봇 수요가 늘고 있다. 에이트론을 24시간 가동하면 1년2개월, 하루 8시간씩 가동하면 3년6개월 정도에 로봇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에이트테크 측 설명이다.
실제 이 재활용 선별장도 올해 상반기까지 2대,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2대를 더 도입해 5개 라인에 모두 에이트론을 설치할 계획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생활계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56.7%(2021년 기준)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폐기물 대비 재활용 선별장에 가는 비율을 의미한다.
문제는 재활용 선별장에서도 온전히 선별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선별장 현장 상황을 고려할 때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30% 수준에 그친다는 게 폐기물업계의 추정치다.
이에 실질 재활용률로 통하는 선별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분리배출을 잘하는 동시에 각 재활용 선별장의 시스템과 노력이 잘 맞물려 들어가야 선별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로봇을 도입하는 등 재활용 선별장 현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정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오는 2025년까지 플라스틱 광학선별기 설치가 의무화된다. 환경부도 선별장 현대화를 위한 예산을 마련했다. 보조율 30~50% 선으로, 지난해 약 281억원, 올해 약 420억원이 책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