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서울 마포구 합정역 앞 사거리. 사거리에 진입하다 보면 길가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치권에서 내건 현수막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하나씩 나란히 걸었다.
사거리에 도착하니, 또 현수막이 있다. 이번에도 국민의힘, 민주당이 하나씩 걸었다. 사거리를 통과하자 또 현수막이 나온다. 이번엔 아예 문구마저 같다. 사거리를 통과할 때까지 같은 현수막을 3개씩 봐야 하는 꼴이다.
두 정당이 내건 현수막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지방자치단체 현수막, 부동산 광고 현수막, 교통안내 현수막 등 이 사거리에만 총 9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선거철도 아닌데 현수막 쓰레기가 넘쳐난다. 현수막은 절대 다수 잠깐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 쓰레기들이다. 작년 지방선거 한 번에 쓰인 현수막은 총 12만8000여장. 한 줄로 이어보면 1281km에 이른다. 현수막을 에코백 등으로 재활용한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티끌 수준이다. 나머진? 모두 폐기물로 소각처리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선거철도 아니다. 그런데 주요 거리마다 현수막이 넘쳐난다. 정치권이 걸고, 재개발을 축하한다며 걸고, 졸업식이라고 걸고, 입학식이라고 걸고, 심지어 연예인 생일이라고 건다. 우린 언제까지 넘쳐나는 현수막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어야 할까.
합정역 사거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철봉. 현수막을 쓰고 남은 노끈이 가득했다. 여긴 1년 내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시피 하다. 인근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9) 씨는 “지지 정당을 떠나 보기 싫은 문구가 많다”며 “현수막에 가려져 횡단보도에서 버스 정류장을 보기에도 불편하고 문구를 보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지난 2월 한 대학가 풍경. 졸업식을 맞이한 교내 거리마다 현수막이 빼곡하다. ‘아무개 졸업 축하해’ 식의 현수막도 다수 눈에 띈다. 단 하루, 졸업식을 위해 쓰인 현수막들이다. 하루가 지나면 모두 쓰레기장으로 간다.
우린 현수막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정확한 통계는 파악조차 어렵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으로 집계되는 선거철 현수막으로 짐작해볼 뿐이다. 작년 지방선거엔 총 12만8000여장이 쓰였다. 10m 길이의 현수막을 한 줄로 이어보면 1281km에 이른다. 현수막을 모두 펼쳐놓으면 면적은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21배. 무게도 192t에 달했다.
이 현수막은 선거운동용 현수막만 포함된 수치다. 후보자나 정당선거 사무소 외벽에 걸리는 현수막이나 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 등은 제외됐다.
현수막은 물론 재활용도 한다. 하지만 폐기물 양에 비해 너무 미비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선거 이후 폐 현수막 재활용률은 20~30%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재활용되는 것도 단순 작업을 통해 장바구니, 마대 등으로 쓰는 방식이다.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판매하기 힘든 상품성이니, 친환경을 홍보하는 수단 정도에 그친다.
최근 현수막 쓰레기가 특히 논란이 된 건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된 여파가 크다.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8조에 따르면, 비영리 목적의 광고물은 허가·신고 대상에서 제외하고 30일 이내에 걸 수 있다. 정당 정책의 경우는 15일 이내다. 시설물 보호 등의 현수막이라면 30일을 초과할 수도 있다. 현수막 사용 범위나 기준 등이 완화되면서 특히 정당 현수막이 급증했다.
정당 현수막이 급증하면서 자극적인 문구에 반발이 거세지만, 환경단체는 현수막 사용 증가 자체부터 지적하고 있다.
경남환경운동연합 등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불쾌지수를 높이고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현수막 홍수를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수막 1장은 4kg의 온실가스와 다이옥신 같은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하며, 1년 내내 현수막이 쓰이면 4000t의 탄소배출과 30년생 소나무 60만 그루를 베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