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서울 중구 고층 빌딩에서 근무하는 A씨. 무심코 유리창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사체를 봐서다. 알고보니 처음 있는 일도 아녔다.
A씨는 “전면 유리로 된 건물이 좋고 뿌듯해 보였는데, 새들이 부딪혀 죽는 원인이 될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연간 800만 마리. 유리벽에 부딪혀 죽는 새의 숫자다. 건물 유리창 뿐 아니다. 방음벽이 길게 늘어선 고속도로, 버스 정류장 유리창 등 일상에서 계속 새들이 죽어간다.
최근엔 통유리로 된 건물이 급증하면서 조류 충돌 피해도 늘고 있다.
10일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조류는 안구가 측면에 위치해 시야가 좁다. 투명하고 반사가 잘 되는 유리를 보면 새들은 그냥 통과하려 든다. 가벼운 골격으로 시속 40~70㎞의 빠른 속도로 벽에 부딪히니 생명을 잃기 쉽다.
국내에서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된 건 약 6년 전이다. 수의사인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과 김윤전 국립생태원 외부연구원은 생물다양성을 탐사하는 시민과학프로젝트 ‘네이처링’에서 2018년부터 야생조류 충돌 피해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네이처링에 모인 피해 사례만 4만491건. 지난해 1년 동안 132종, 1만3038마리의 조류 충돌이 발견됐다.
최근엔 유리를 두른 건물이 주요 이유로 지목된다. 요즘 건축물은 강철로 기둥을 세우고 유리를 두르는 방식(커튼 월, Curtain Wall)이 인기다. 콘트리트 건물에 비해 건축 기간이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90년대 이후부터 널리 쓰인다. 통유리로 된 건물 등이 늘면서 조류 충돌 사례도 늘게 된다.
불투명한 소재를 쓰는 게 가장 좋고, 투명한 소재를 쓰더라도 조류가 장애물로 인식하게 표시할 수도 있다. 환경부의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대부분 조류는 높이 5㎝, 폭 10㎝ 미만의 틈으론 잘 날지 않는다. 그래서 촘촘하게 테이프나 필름 등으로 이를 표시하면 된다.
오는 6월부턴 야생동물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의무화될 예정이다.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건축물이나 방음벽 등엔 조류 피해를 줄이도록 관리할 의무가 부여된다.
법 시행을 앞두고 각 지자체들도 관련 조례를 갖추고 있다. 서울 구로구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조류 충돌 저감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도 작년 10월 조류 충돌 방지 등을 포함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제도를 정비했다. 철새가 많이 찾는 경기 김포·시흥시, 경남 김해·진주 시 등 지자체 30여 곳도 자체 조례가 있다.
다만, 이 같은 적용이 공공 구조물에만 그친다는 건 한계다. 전체 건축물 중 97%는 민간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와 함께 조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도 극복과제다. 서울시청의 경우 전면에 조류 충돌 방지 저감 필름을 부착할 경우 20억원 가량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민간 참여를 독려하고자 작년엔 ‘건축물·투명방음벽 조류충돌 방지테이프 지원사업’으로 1억5000만원 가량 예산을 배정한 바 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민간 부문까지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강제할 수 없는 데다 비용도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오는 6월 법 시행으로 첫 삽을 뜨고, 이후 민간으로 점차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