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조선백자:군자지향’전
3개 달항아리에 얽힌 이야기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주인공은 맨 나중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빛 한 줌 들지 않는 200여평 블랙박스에 총 42개의 명품 조선백자들이 도열했다. 그 가장 안쪽에 그들이 있다. 동시대 미감에서 최고로 찬사 받는 조선백자, 바로 달항아리다.
300여점 파편에서 살아나 ‘미술품 복원의 기적’
360도로 돌아 볼 수 있는 쇼케이스에 담긴 달항아리 석 점은 서로 닮은듯 닮지 않았다. 차례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보물 1441호), 개인소장(국보 제309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이다. 이지러진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고 흰 빛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모두 달항아리 대표주자로 꼽히는 문화재들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달항아리는 다른 두 달항아리에 비해 날렵하다. 개인소장 달항아리엔 얼룩이, 오사카에서 온 달항아리는 실금과 같은 잔 기스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온 달항아리는 사실 ‘부활’한 도자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출간한 ‘국보순례’에 따르면, 원래 이 달항아리는 일본 나라지역의 한 사찰의 소장품이었다. 1995년 도둑이 훔쳐가려 하다가 들켜 경비원에게 쫓기자, 들고 있던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보고 사람들이 망연자실한 사이 도둑은 도망갔다. 셀 수 있는 파편만 300점이상이었다. 사찰측은 깨진 조각과 가루까지 모조리 쓸어담아 보존하고 있다가 이후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은 2년간 복원 할 것인지 아니면 깨진 파편채로 전시할 것인지를 놓고 논의 후, 복원으로 가닥을 잡고 복원기술자 섭외에 나섰다. 7개월의 작업 끝에 달항아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유홍준 전 청장은 “이후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전설적인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얽힌 이야기를 알고 다시 달항아리를 보면 얼굴의 주름처럼 패인 흔적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수리한 흔적을 일반인이 맨눈으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다만 긁힌 자국을 새로 하얗게 칠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200년 넘는 시간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달항아리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에서 소개된 바 있다.
故 이건희 회장도 즐겼던 얼룩진 달항아리
개인소장으로 소개된 달항아리는 이전까지 리움미술관 상설전에서 소개됐던 그 달항아리다. 고(故)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살아생전 아꼈던 유물이라고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원의 모양이 달라져 살짝 이지러진 미감이 일품인데, 거기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특징이다. 지난 2007년 국보로 지정됐다. 18세기 조선에서만 만들어졌던 달항아리는 아직까지 정확한 용도를 알지 못한다. 약 1세기 동안만 만들어졌고, 이를 기록한 사료나 그림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얼룩이 있는 이 달항아리 덕택에 간장을 담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을 했었다. 그러나 2007년, 리움 보존연구실에서 재미있는 결과를 발표한다. 전시를 위해 성분조사를 했더니 오동나무 기름과 가장 비슷한 스펙트럼이 나온 것. 오동나무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은 주로 가구나 장판지를 먹이는데 사용했다. 간장과 같은 식재료가 아닌 고급 기름을 넣는 용도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뮤즈, 달항아리
날렵한 자태로 세련된 미감을 자랑하는 아모레퍼시픽 소장 달항아리는 자신을 닮은 건물이 있다. 바로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다. 영국 건축 거장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지난 2018년 완공한 이 사옥은 흰 정육면체 모양에 2만여개 수직 루버를 드리운 외관이 독특하다. 5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용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당시 내한해 기자들과 만났던 치퍼필드는 “조선백자 정점인 달항아리에서 미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치퍼필드는 원래도 백자를 좋아하고 수집하던 컬렉터다. “건축주인 서경배 회장의 백자 컬렉션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 비슷한 취향임을 알게 됐다. 조선백자는 세계 예술의 정점을 이루는 경지를 보여준다. 백자에서 우러난 절제의 미학이 새 사옥 건축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 리움이 리움했다!
이처럼 한국 미감의 절정이 담긴 달항아리 세 점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전시는 바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리움은 오는 28일부터 조선백자 명품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을 오는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리움이 도자기전을 여는 것은 지난 2004년 개관 이래 처음이다.
전시는 ‘리움이 리움했다’로 요약된다.
블랙박스에 전시된 백자는 달항아리 석 점을 포함해 총 42점. 그 중 국보가 10점, 보물이 21점, 문화재급 백자가 3점, 일본 소재 수준급 백자가 8점이다. 정부가 지정문화재로 관리하는 백자는 총 59점(국보 18점, 보물41점). 그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21점)이 모였다.
전시를 위해 한국 수준급 도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20여점을 대여해줬다. 국립중앙박물관, 호림미술관, 간송미술관 등 국내 8개 기관과 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민예관 등 일본 6개기관도 수작을 내줬다. 리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전시이자, 앞으로도 두 번 다시 열리기 어려울 규모다.
국내외 옥션에 나오는 달항아리, 추정가는?
뜨거운 달항아리 열풍 때문일까. 국내 옥션과 해외 옥션에서도 나란히 달항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티 코리아는 3월 21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록펠러 센터에서 한국 고미술품 경매를 진행한다. 약 20여점이 출품되는 이 경매엔 18세기 백자 달항아리가 나왔다. 추정가는 100만~200만달러(약12억원~25억원)이다. 지난 22일부터 24일엔 서울에서 프리뷰도 진행했다. 일본 개인 소장가가 오래 가지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일부러 표면의 묵은때를 벗기지 않아 오랜 시간 거쳐 자연스럽게 변한 백색이 아름답다. 서울옥션도 달항아리전을 진행중이다. 3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엔 달항아리를 포함해 백자 12점이 나왔다. 여러 개인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던 도자가 전시를 기회로 대중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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